그해 5월.

햇살은 따뜻했고, 좋은 의사가 되리라는 꿈과 포부는 충만하였으며 하얀 가운이 주는 사명감은 특별했고 ‘불치‘를 ’완치‘로 바꾸어내겠다는 각오 또한 가득하였다

그러한 각오와는 달리 순수한 절대적 꿈이라 여겼던 의사에 대한 동경이 미처 생각지 못한 나의 내면 저 깊은 곳에는, 의사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의 외형을 동경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고뇌와 시간이 갈수록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무기력함에 점점 빠져들며 가슴 한 쪽에서 인턴의 위치란 병원이라는 거대한 괘종시계 저 구석, 보이지 않는 작은 부속물에 불과 하다는 자조 섞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이었다.

특히나 혈액종양내과와 신장내과의 인턴으로서 하는 주된 일이란 ‘욕창이 생긴 환자들의 엉덩이를 소독하는 것’이기에 그러한 생각은 더해갔다.

그러던 5월초, 말기 암 환자인 박창균氏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는 54세였고, 욕창이 심했으며 너무 말라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겨우 겨우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말기 암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방광에서 시작된 암은 불과 1년 만에 대장을 침범하여 배에 인공항문을 달게 되었고, 척추신경까지 진행되어 하지의 감각과 운동신경을 마비시켜서 혼자의 힘으로는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인사를 하고 욕창을 확인하려고 돌아눕히는 데, 살 썩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다. 다른 보통의 암 환자가 그러하듯이 말기 암환자라 해도 의식만은 또렷하던 그는 자신의 그러한 몸 상태로 인하여 나를 귀찮게 한다며 미안해하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오히려 나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썩은 살점들을 베타딘을 희석한 솜으로 닦아 긁어내고, 그 위에 스폰지 모양의 거즈를 덧씌운 후 테이프로 붙여주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썩은 살점들이 모두 긁어내고 피가 나올 때까지 닦아주어야 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가 않았다.

내가 소독을 마치고 나면 그는 감사하다며 합장 인사를 하였는데, 그때 그의 희미한 미소와 쓸쓸한 눈빛을 못 본 척 하며 합장한 두 손을 마주잡아 줄 때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앙상한 손이 안쓰러웠다.

매일 오후 3시면 박창균氏가 있던 병실로 가서 썩은 살점을 긁어내고 소독을 하는 것이 매 끼니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갔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면서 절대 낫지 않을 것 같던 욕창에 새살이 돋아나고, 고름도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의사로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중 나의 행위로 인하여 누군가의 상처가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새로운 감정이었고, 기쁘기까지 하였다. 시간이 거듭될수록 그의 상처가 걱정되었고 떨어져나가는 고름살점들에 마음이 쓰여 갔으며 앙상하게 마른 그의 손을 보며 마음 아팠다. 매일 박창균氏의 욕창을 치료하는 과정은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도 함께 치료해가는 과정이었다.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날 오후,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욕창소독을 마친 내손을 잡고는 “선생님, 마지막으로 밖에 나가 햇빛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눈빛은 간절하였으며 목소리는 절실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그가 뱉은 마지막이라는 말에 무엇인가 쏴아한 아픔이 밀려왔다.

vital이 불안정한 말기 암환자를 임의로 이동시키기에는 인턴으로서의 권한은 너무 작았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께 말을 해보겠다고 에둘러 말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간절했던 눈빛과 어쩌면 마지막을 느끼고 있었을 그의 목소리가 밤이 깊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지도 못하고 monitoring 기계들이 줄줄이 달려있는 환자를 침대 째 움직이기에는 밖은 고사하고 복도에 나가는 것조차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매달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부탁들 들어주지 못한 일이 마음에 걸려서 다음날 욕창소독을 하러 갔을 때도 미안한 마음 때문에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날, 아침부터 말기 암 병동에서 호출이 왔다. 사후처리를 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쿵’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병실에 들어선 순간 내가 매일매일 손을 잡고, 연고를 바르고, 욕창 소독을 해주던 ‘나의 환자’ 박창균氏가 결국 그렇게 돌아가신 거다.

먹먹한 마음을 달래며 보니 손가락마다 거즈가 감긴 두 손을 배위에 가지런히 올린 모습이었다. 몸에 달린 라인들을 제거하고, 엉덩이에 붙여놓았던 욕창 반창고도 제거한 후 마지막으로 손가락마다 감겨진 거즈를 제거하였다.

마지막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보고 싶다던 박창균氏….

파란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가득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이미 차가워진 그의 손을 잡고 마음속으로 정말 죄송하다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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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5월, 박창균氏의 엉덩이에 생긴 고름을 긁어내던 기억과 의사인 내 손을 잡고 미안해하던 그의 말은, 두고두고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소독하는 베타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