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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소생실 밖에서 기다리며

  • 연도2022년
  • 수상동상
  • 이름이시진
  • 소속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응급의학과


나는 내가 어떻게 죽을지 알고 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죽을 것이다. 한국인의 절반이 암, 심장질환, 폐렴으로 죽는다. 노년에 치명적이고 만성적인 질환이다 보니, 인생의 최종전은 대개 병마와의 길고 지난한 싸움이 된다. 이 처절한 공성전에 대응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항암 치료, 약물과 수술, 방사선 요법, 각종 검사와 시술 등이 무너지려는 인체를 끝끝내 수성하며, 실제로 극적인 방어에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시간을 이길 수 없기에 장기전에 돌입하면 환자는 점차 노쇠해지게 마련이고, 포위당한 채 버티는 것은 종종 한계를 맞이한다. 완화의료와 같은 선택지도 있지만, 적극적 치료를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정답일 리도 없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둔다.


이것은 내가 처음 의사가 되어 중환자실 인턴으로 일하며 배운 첫번째 사실이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온 가족에게 돌아가면서 우아하게 유언을 남긴 후, 살며시 눈을 감고 손목을 곱게 떨구는 것이 죽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목에 꽂힌 관에 가래 섞인 소리가 그릉그릉하고, 엉덩이 꼬리뼈 근처에 진물 섞인 욕창이 생겨가는 것이 죽음의 민낯에 가깝다는 것. 몸에 꽂은 관이 하나씩 그 수를 불리고, 약물이 담긴 수액 주머니가 주렁주렁 늘어난다. 하지만 숙환에 장사는 없다는 말처럼 장기는 차츰 망가지고, 몇 차례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멎는다. 그것이 초보 인턴인 내가 가장 많이 목격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나 역시 그렇게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연장시키려는 의학적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의사에게는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있다. 나도 거기에서 희열을 찾았고, 그래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병 또는 외상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야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응급치료를 받으면 중증 환자도 극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전장의 절규를 환희의 승전보로 바꿀 수 있기에, 시간은 언제나 응급실 의사의 최대 관심사다. 죽음을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금과 같이 귀한 시간(Golden Hour). 그래서일까. 그 환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다른 의미의 시간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남자는 우리 병원에서 오랫동안 폐암 치료를 받은 60세의 가장이었다. 가정 간호중이던 아내가 남편을 응급실로 데려왔다. 길고 긴 차트는 이 사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암과 싸워왔는지 말해 주고 있었고, 오랜 간병 때문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내의 안색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 했다. 숨이 밭은 남자를 대신해 아내가 말을 이었다.


“이이가 글쎄, 새벽부터 영 상태가 안 좋더니, 갑자기 숨을 잘 못 쉬겠대요….”


서둘러 확인한 흉부 엑스레이가 온통 흰빛이었다. 환자의 폐에는 도무지 정상인 부분이 없었다. 혈액검사와 모니터, 영상 검사가 전부 좋지 않은 결말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말기 폐암, 거기에 합병된 중증 폐렴으로 급격히 진행된 ARDS(급성호흡곤란증후군)…. 나는 보호자에게 예후가 좋지 않음을 알려야만 했다. 아내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덤덤히 내 말을 듣고서 자녀들을 전화로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최소한의 호흡 유지를 위해서 기관 삽관이 필요했다. 내가 기관 삽관을 하고 기계 환기로 환자의 숨을 붙들고 있으면, 내과 의사가 환자를 인계해 갈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될 것이고, 그 곳에서 몸에 꽂힌 여러 개의 관들과 그보다 더 많은 약물의 덕택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기도의 튜브를 다시 빼고, 오늘 나선 집으로 그의 아내와 다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연신 불길하게 떨어지는 산소포화도 알람 너머로 환자의 두 자녀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딸이 침상 옆에 쪼그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더 어려 보이는 아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소생실 환자분 인투베이션(기관 삽관) 준비되었습니다.”


간호사가 나를 독촉했다. 여전히 내가 할 일은, 그 남성에게 기관 삽관을 해서 호흡을 확보하는 일이다. 삽관을 하고 안정제를 주사하는 일은 그의 가쁜 호흡을 도와주고 생을 연장시킬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아내에게 말을 건넬 수 없게 하고, 젊은 자녀들을 알아볼 수 없게 할 것이다.


“잠깐만요, 이거 조금만 있다가 할게요.”


나는 카트를 뒤로 물리고 응급실 구석 한켠으로 그 가족을 불러 모았다. 이게 맞는 걸까? 나는 일개 레지던트인데. 괜한 오지랖 아닐까.


“보호자분, 저는 지금 기관 삽관을 하려고 합니다. 이미 폐가 다 망가져서, 아버님은 스스로 호흡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요. 목구멍에 관을 꽂아서, 기계로 숨을 쉬게끔 해야 합니다.”


이미 나쁜 소식을 전해들은 데다가 모든 서류뭉치에 서명을 마친 일가족은, 의사가 뭘 더 말하겠다는 건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현재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셔서 솔직히 관을 다시 빼도 좋을 만큼 호전되시는 것은 지금 상황에선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목을 쭉 빼서 건너편의 환자 모니터를 쳐다봤다. 몇 분이나 가능할까? 시술을 늑장 부린다고 교수님께 공연한 야단이라도 맞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아빠 돌아가시는 거예요? 아니지요? 아직은 아닌 거잖아요. 우리 그거, 심폐소생술 그런 거 다 할 거예요.”


약간 격앙된 딸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DNR(Do Not Resuscitate 소생술 포기) 환자도 아닌데, 역시 괜한 말을 꺼낸 것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이야기를 도로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따님 말씀 맞습니다. 제가 이제 기관 삽관도 할 거고, 중환자실도 가셔서 집중치료도 받으실 거예요.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겁니다. 그런데, 목에 관을 꽂은 상태로는 아버님이 말씀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겠죠? 그리고 안정제를 투약할 거라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실 겁니다.”


“…”


“지금 상태에서 오래는 안 되겠지만… 5분 정도 제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혹시 시술 전에 가족분들이 잠시라도 대화를 나누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저도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괜한 실례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일단 기관 삽관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기회가 없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환자의 아내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대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의료진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소생’을 위한 집중 치료를 퍼붓는 장소인 소생실에, 환자와 가족만 덩그러니 둔 채 홀로 문 밖에 서있었다. 초를 다퉈가며 급박한 혈투를 벌이던 곳에서, 불과 몇 분이지만 고의로 치료를 지연시키고 있었다. 성공적인 치료를 약속하지 못하는 상황도, 짧은 작별의 시간마저 끝내야 한다는 것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어느덧 약속한 5분이 지났지만, 내가 다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소생실의 문이 천근 만근이었다. ‘이 문이 원래 이렇게 무거웠나. 돌덩어리가 따로 없구나….’ 정말 그랬다. 이제는 금도 은도 더 이상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무한한 중량감만 존재하는 돌의 시간이었다.


남자는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하고도 이틀을 더 버티고 사망했다. 그러니 내가 벌어 준 잠시의 시간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도 아니었고, 극적인 회복으로 이어진 골든타임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수백 수천명의 절절한 사연과 많은 죽음을 겪은 지금도, ‘5분’이란 평범한 단어만 들어도 퍼뜩 그 날이 떠오를 때가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나의 아내가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당기며 ‘나 5분만 더 잘래….’라고 중얼댈 때, 오랜만에 나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가 ‘우리 손주 얼굴 좀 보여다오. 5분만 영상통화 하자.’라고 하실 때, 불현듯 퀭한 눈매를 한 채 힘겨운 호흡을 뱉던 그 사내와 그 가족이 생각난다. 이렇게 예사로이 살아가다가도 어느 날 나도 이토록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 나에겐, 무엇이 간절할 것인가.


나는 내가 어떻게 죽을지 알지 못한다. 인턴일 때는 얼핏 비슷비슷해 보였던 죽음도, 저마다의 삶이 달랐던 만큼 그 결이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물며 아직 숨이 붙어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남길 수 있는 것이 왜 없겠는가. 그 날, 어렵게 소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힘없이 침상에 늘어져 연신 쌕쌕대는 중년의 가장이 잠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아내와 자녀들과의 인사에 모두 소진한 탓인지 나에게 딱히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5분이 그 가족에게 무슨 의미였을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소생실을 나가며 눈가를 훔치는 가족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표정에서 어렴풋이 뭔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만큼은, 돌에 새긴 듯이 가슴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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