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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어

대표이미지_6175

2005년 제21회 대상수상자

유루시아 수녀

메리놀리 수녀회 (서울시 영등포)

연도 2005년
회수 제 21회
이름 유루시아 수녀
소속 메리놀리 수녀회

약력

  • 이력

    1931. 경남 하동 출생
    1955. 수도여자의과대학 졸업(현 고려대 의대 전신)
    1957. 부산 일신부인병원 근무
    1959. 미국 일리노이주 피어리아 감리교 병원, 밀워키 위스콘신 대학 성모병원 레지던트 수료 후 근무(산부인과)
    1964. 부산 메리놀병원 근무
    1965. 필리핀 소재 메리놀수녀회 입교, 필리핀에서 의료선교 시작
    1968. 아프리카 케냐 키난고병원 원장
    198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재 대학 공중위생학 석사
    1983. 케냐 부라병원 자원 근무
    1989. 미국 전지역을 순회하며 아프리카 선교교육 및 모금운동
    1992. 영등포 소재 요셉병원 의료봉사
    1996. 중국 선교개척지 자원 근무
    현재 요셉의원에서 행려자, 알코올중독자, 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
    포상
    1977. 케냐정부로부터 감사장 수상
    1989. 학원사, 주부생활에서 공동제정한 제 1회 오늘의 여성상 봉사부문 수상

케냐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유 수녀는 그 후 산부인과 레지던트 수련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지금 생각하면 이 사람, 저 사람, 이 모퉁이, 저 모퉁이로 당신을 이끈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겠냐며 상황을 설명한다.
"미국에 있을 당시 메리놀 수녀회의 머시 수녀님한테 편지가 왔어. 케냐 정부하고 독일주교회에서 돈을 모아서 케냐에 병원을 짓는데 의사 한명, 간호사 세 명이 필요하다고. 머시 수녀님도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었거든. 암암리에 내가 받은 은혜는 갚아야겠다는 생각이었지."
이런 생각에 선뜻 '네,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20대의 젊은 여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려웠지. 케냐로 떠나기 일주일 전에는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거든. 그게 보통 일인가? 하지만 그렇게 해야 했어."
단호히 말하는 70대 노파의 눈에서 처음 케냐를 떠나는 20대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떠난 길은 20년간 계속됐고, '케냐의 어머니'는 그이의 대표적인 수식어가 되었다.


생각보다 참담했던 현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곳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참담했다. "대부분이 영양실조, 폐병, 설사병, 나병 등 이른바 후진국 병이었어.
6.25를 지낸 사람들은 내 말을 알 거야. 소아의 사망률이 50%거든. 100명을 낳으면 5년 후엔 50명만 살아있는 거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루 300명의 환자들을 돌봐야 했고, 수술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하루종인 수술 방에 있기를 수 차례.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먹을 거리도 넉넉지 않은 그곳에서 유 수녀는 20년을 한국 의사로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막이나 케냐의 오지만을 돌며 사람들을 치료했다.

가장 힘든 점은 정서적인 차이였단다.
"케냐 사람들은 정신불구자들을 하늘에서 벌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치료를 못 받게 하거든. 마을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했지.
내 말은 듣지도 않아. 그래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설득하도록 마을 공동체 사람들 중에 몇 명을 뽑아 가정방문도 시키고 마음에 쉼터도 마련해 사람들을 오게 만들었지. 허락된다면 그 곳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잘 살고 있는 지 궁금하거든."

어찌 보면 케냐는 유 수녀의 또 하나의 고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 곳을 떠난 이유가 궁금해졌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할 때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에 출전할 케냐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었거든. 가장 큰 이유는 내 뿌리를 찾고 싶어서였고."
11세 때부터 공부를 위해 혼자 객지생활을 했다던 그이는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레지던트는 미국에서, 그리고 의료선교를 위해 케냐에서 20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놀 수녀회의 교율에 따라 3년동안 미국으로 선교 교육을 떠났고, 다시 한국에 들어와 서울 영등포의 요셉병원에서 3년 반 동안 노숙자, 행려자,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을 돌봤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그 곳 의과대학에서 의학영어를 가르치다 다시 한국으로 들어 온 지 이제 1년 남짓.

"요즘은 '영웅시대'며, '대장금'을 재미있게 보고 있어.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같은 영화도 그렇고….
앞으로도 뿌리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를 알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지."


요셉의원서 함께 하는 봉사의 즐거움

중국에서 돌아온 후부터 유 루시아 수녀는 메리놀 수녀회의 웃어른으로서 수녀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젊은 사람들을 봐주고, 수,목,금요일은 요셉의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다.
요셉의원은 1987년 8월 문을 열었으며 순수하게 노숙자, 행려자, 알코올 의존증 환자, 외국인 근로자들의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다.

"사회적 현상의 희생자들이 이 곳을 찾지. 그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이야.
재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일순간에 무너지거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 수녀의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같이 봉사하는 젊은 의사들을 보면 대견하다.
"머리에 무스 바르고, 귀 뚫고 해도, 참 착해. 어려운 사람들을 씻겨주기도 하고, 밥도 먹여 주고, 앞으로 그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할거야…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내 은인인 닥터 헬렌 맥킨지가 지금 호주에 있거든. 90살이 넘었는데, 살아계시는 동안 한번 찾아가서 내 인생을 바꾼 그 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더 이상 유 수녀에게 '케냐의 어머니'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간 너무 많은 언론에서 주목했고, 또한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게 사실이니. 하지만 이렇게 부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만으로는 그 수많은 세월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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