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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길 인도하는 선한 목자

대표이미지_6325

2015년 제31회 이달의 수상자

이창우 원장

선한목자병원 ( )

연도 2015년
회수 제 31회
이름 이창우 원장
소속 선한목자병원

약력

  • 1994.03 ~ 1997.02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1996.02 ~ 1997.01 제천 서울병원 정형외과 과장
    1997.03 ~ 1998.02 미국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박수후 과정 연구원
    1998.03 ~ 1999.12 미국 피츠버그 의과대학 스포츠의학및 줄기세포 연구원
    1999.09 ~ 1999.10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인공관절 연구원
    2001. 선한목자정형외과 개원. 국내 무의탁 노인, 노숙인, 무의촌 무료 진료
    2004. 마이크로네시아, 몽골, 라오스 의료봉사
    2005. 네팔,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의료봉사
    2006. 파키스탄, 라오스, 네팔 의료봉사
    2007. 중국, 라오스, 네팔 의료봉사
    2008. 중국, 네팔 의료봉사
    2009 ~ 2010. 미얀마 의료봉사, 국내 무의촌 무료 진료
    2011 필리핀, 아이티 의료봉사
    2012. 미얀마, 아이티, 라오스, 필리핀, 파키스탄, 네팔, 이집트, 블라디보스톡 등 의료봉사
    , 굳셰퍼드 재단법인 및 비영리 민간단체 승인

외과의였던 아버지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어머니는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왔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자람도 없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타적인 삶을 마주하면서 형제들 모두는 아버지와 같이 다른 이들을 도우면서 살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선한 목자처럼 라오스, 파키스탄, 네팔 등 동남아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선교병원을 향한 꿈, 스포츠 의학으로 이끌다


이창우 원장은 줄기세포 치료, 인공관절수술, 관절내시경, 자가연골 재생, 스포츠 의학을 전공분야로 하며 인공관절 네비게이션을 개발한 최고의 전문가다. 학계에 남으라던 수많은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을 세운 것도, 아니 의학을 전공하여 전문의가 된 것도 모두 의료 선교를 향한 의지에서 비롯됐으니 신념과 뜻에 따라 걸어온 오랜 길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머니가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기에 가족 모두 선교에 몸을 담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창우 원장의 목소리엔 굵직한 울림 같은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소아정형외과 분야를 공부하려 했는데, 선진교육을 둘러보기 위해 미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만났던 교수님께서 멀리 보라 조언하셨죠. 그래서 스포츠의학, 인공관절수술 분야로 전향하여 공부하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의료 선교를 목표로 병원을 세우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줄기세포와 인공관절,스포츠의학 쪽으로 전향한 것은 참 잘한 일 같아요.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예견했던 교수님 덕분이죠.”
유전자 치료술, 세포 치료 등 첨단의학을 전공하기 위해 가족 모두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1997년 여름 공교롭게도 IMF가 터졌다. 하지만 반지하 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고 어쩐지 그 기도에 화답하듯 길이 열렸다. 미국연수기간 3년 중 2년 장학금을 받기로 했던 것을 1년 앞서 받게 됐고, 그렇게 3년동안 존스홉킨스대학병원, 피츠버그대학병원, 하버드대학병원 등 굴지의 대학에서 연수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이창우 원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최적의 장소에서 최고의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유학 후 돌아와 교수직의 좋은 제안이 있었지만 의료 선교에의 꿈이 더 컸기에 2001년 선교병원인 선한목자병원을 세운 이창우 원장은 먼저 국내 의료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걷는 데 어려움이 있던 어르신 두 분의 인공관절 수술을 해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병원 개원 후 2년간은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갔던 것 같아요. 무릎 관절 수술 환자가 대부분 65세 이상 노인인 데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계셨기에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죠.”
광림복지재단과 손잡고 전국 미자립교회 목회자나 생활이 힘든 저소득층 어른을 추천받아 수술을 진행했다. 29개 병실은 금세 상태가 심각한 노인들로 가득 차게 됐다. 간호사들이 중환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 단체로 사직하는등 선교병원이 이렇게 망하는가 싶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준비된 간호사들이 줄을 이었고, 이제는 봉사를 함께하는 든든한 동지가 됐다. 그렇게 단양, 제천, 이천, 서산, 횡성 등지를 다니며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함께 돌보았고 월 2회 서울역 주변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진료 활동을 펼쳤다. 또 국내에 체류 중인 해외 선교사들을 위한 수술도 진행했으니,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국내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한목자병원 해외 무료진료소 1호, 비엔티안 선한목자병원


힘든 처지의 어르신들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는 등 국내 의료봉사에 매진한 지 3년 만에, 2004년 꿈에 그리던 첫 번째 해외선교가 시작됐다.
“2004년 1월 설 연휴를 이용해 태평양 서북부에 위치한 미크로네시아라는 섬나라로 향했습니다. 괌 옆에 위치한 나라로 76세 아버지, 물리치료사와 간호사 등 11명이 동행했죠. 10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지만, 한편으론 회의감도 밀려왔어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생각에서였습니다.”
그해 4월 진행된 라오스 선교는 무료 진료소를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현지 간호사 한명을 고용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약값을 대는 것이다. 5월 무료 진료소를 설치하고 비엔티안 선한목자병원이라 이름 붙였다. 병원 내 진통도 컸지만,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것을 시작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라오스는 인도차이나 한가운데 있는 불교의 나라이죠. 프랑스 밑에서 오랜 식민지였고, 또 태국의 괴롭힘도 지속적으로 받아왔어요. 그런 모습이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해서, 말 그대로 마음이 꽂혔습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의 나라로, 이창우 원장의 형님이 19년째 선교사로 활동 중이다. 강성 이슬람의 나라에서 크리스천인 사람들은 온갖 불이익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창우 원장은 강성 이슬람의 나라에 선한목자 무료진료소를 세우면서 크리스찬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생길 수 있기를, 종교에 대한 억압이 사라지기를 희망했다.
2005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 이슬람 회당 처마 아래 차려진 간이진료소에서 2일간 600명 이상의 쓰나미 피해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해 7월에는 파키스탄 의료선교를 다녀오고 9월에는 네팔 치투완에서 진료활동을 펼쳤다. 치투완은 감리교 소속 이해덕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하는 곳으로 수도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다. 이해덕 선교사는 400여 명을 고아들을 모아 ‘소망의 집’이라는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이창우 원장은 환아들의 염증을 치료하고 종양을 떼어냈다. 항생제 하나만 제대로 처방받아도 이렇게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 못 들었고,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무료진료소를 세우기로 했다.

힘들수록 의료봉사에 대한 의지 더욱 단단해져


때론 귀국길에 공항 검색대에서 모든 짐을 풀어놓기도 하고 해외에 정기적으로 고액의 달러를 가지고 나간다는 이유로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라오스병원의 경우, 정부 관료들이 돈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철수한 적도 있다. 특히 수십 차례 해외 의료선교 활동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인천공항 입국심사였다고 한다.
“현지 의료선교를 마치고 남은 소독약품과 수액이 들어있는 큼지막한 가방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검색대로 가서 모든 짐을 풀어놓아야 했어요. 여권만 살펴봐도 라오스, 미얀마, 네팔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도배되어 있는데도 매번 심사는 까다로웠지요. 왜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2007년에는 세무조사를 받았다. 한해 네 차례 이상 동남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병원의 규모에 비해 현금 보유액이 턱없이 적으며 해외에 외화를 보내는 등 의심할 만한 이유들이 많았다. 수익을 내지 않고, 직원들과 함께 해외 방문에 막대한 투자까지 세무서 직원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이고, 선교를 위해 세워진 병원이니만큼 그곳에 많은 돈을 투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세무서 직원들은 되려 병원 걱정을 하며 만류했다. 어쩐지 씁쓸했지만 의료선교 활동에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2008년 9월 아버지가 소천하신 후 선한목자병원 의료선교팀은 국내와 미얀마 의료봉사에 주력했다. 2004년부터 5년간은 무료진료소를 설치하고 간호사를 상주시켜 주민들의 질병을 초기에 치료하는 데 힘썼다. 2009년부터는 초창기 한국의 의료선교사들처럼, 병원을 세우고 의료 전문 인력을 배출시키고자 했다. 미얀마에 한국의 세브란스병원 같은 자립병원이 세워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2010년 6월 미얀마 양곤에 클리어 스카이병원이 출범됐고, 한달에 한번 병원을 찾아 관절과 성장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수익의 많은 부분까지 책임졌다. 미얀마 순복음교단 총회본부의 4층 건물을 빌려 선한복자 간호조무사 양성학원을 개원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 병원과 간호학원을 운영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이창우 원장은 미얀마에 굳셰퍼드 메디컬센터 건립을 위한 닻을 올렸다. 그리하여 2013년 6월 미얀마 양곤에 선한목자메디컬센터(GSMC)를 개원, 더 나은 보건의료 환경과 최신시설 장비를 통해 미얀마 현지인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2004년 5월 라오스 비엔타인, 2004년 9월 파키스탄, 2007년 7월 네팔 치투완, 2010년 미얀마 양곤, 2011년 7월 필리핀, 2012년 3월 아이티에 세워진 선한목자무료진료소에 이은 커다란 성과였다.

이창우 원장은 굳셰퍼드재단을 설립하여 세계 13개국 14개 지역에서 다양하고 활발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굳셰퍼드재단은 국내외 의료소외지역 및 긴급 재난지역에 대한 무료진료 활동과 무료진료소 건립, 운영 및 교육활동 등을 펼치며 2012년 외교통상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재단볍인 및 비영리 민간단체다. 이창우 원장은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선교사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선교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어머님이 저를 임신하시고, 임신중독증으로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임신성 고혈압과 시력 저하로 낙태를 권유받았지만 시력을 포기하시고 저를 살려내셨죠. 이미 큰 사랑을 받고, 큰 빚을 지고 태어난 겁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야말로 진짜 선진국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가 초창기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성장한 것처럼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많은 나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이창우 원장은 50대 중반에 늘 실수투성이의 손해 보는 삶이었다고 회고하며,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이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했다. 이 일이 완성될 때까지 실수는 하지만 실패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도 했다. 평생을 이렇게 한길을 걸으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모자라다 말하는 이창우 원장을 보니 새삼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창우 원장은 프랜차이즈 병원이 아닌, 지역별 나라별 선교병원을 만들기를 꿈꾸고 있다. 은퇴 전 100개국에 병원을 세우고, 그 일의 중심이 되어줄 좋은 후배의사들을 만나고 싶다. 진정성 있는 의료봉사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이창우 원장. 앞으로도 그가 인도하는 희망의 길에 행복과 건강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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