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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홀릭!, 나눔에 중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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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31회 이달의 수상자

이석재 원장

누가내과외과연합의원 (전주)

연도 2015년
회수 제 31회
이름 이석재 원장
소속 누가내과외과연합의원

약력

  • <의협광고>
    이달의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자는 2005년 8월부터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 전라북도 의료진과 전국 학생들과 함께 의료 선교 봉사 팀을 구성하여 스리랑카의 누와라 엘리야 와 헤튼 지역에 정기적인 방문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전주 누가내과외과의원 이석재 원장입니다. 이석재 원장은 현지와 국내 초청 수술까지 진행하는 등 지속적인 스리랑카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현지 의료진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강화해왔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몽골 의료봉사 활동, 필리핀과 캄보디아 등 응급재난지역 봉사 활동을 펼쳤으며 국내에서도 이동이 어려운 환우들을 위해 이동 방문 진료를 실시하고 장애우 정보화 센타 이사로서 장애 회원의 권익 및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활동하는 등 아름다운 활동을 해해오고 있습니다.

    1962년 8월 07일 전라남도 곡성 출생
    1987년 2월 25일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97년 3월 27일 외과전문의 취득
    2005년 8월~ 스리랑카 정기 방문 의료봉사 활동
    2013년 2월 15일 한일장신 신학대학원 졸업
    현재 전라북도 의사회 총무이사(2012년 이후), 국제 의료협력단 이사(2007년 이후), 생명의 전화 이사(2011년 이후), 사랑나눔회 이사, 장애우 정보화 센터 이사(2005년 이후), 섬김과 나눔 선교회 상임이사(2011년 이후)

그저 좋아서 하는 일에 뿌듯함까지 선물로 따라와 스리랑카를 10년 동안 찾고 있는 전주 누가내과외과연합의원 이석재 원장은 의사들의 건강한 사회참여가 세상을 더욱 밝게 만든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케 했다. 스리랑카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도 이 즐거운 동행 길에 많은 학생들과 함께하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했다. 스리랑카를 떠나오면서 오히려 스리랑카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란 안도감을 느낀다는, 스리랑카에 중독된 이석재 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이거 참 쑥스럽네요.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하고 나면 뿌듯한 마음에 계속 하게 되는 건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눈에 확 띄는 노란 바지를 입고, 캐주얼한 체크무늬 상의를 입은 이석재 원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이 보는 이의 긴장을 풀게 만든다. 전주에서 누가내과외과의원을 개원하고 정신없이 바빴던 와중이라,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의료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때는, 2005년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들이닥쳤을 때다.

“2004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 지역에 쓰나미가 닥쳤죠. 그때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외면할 수 없었죠.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마케도니아 복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스리랑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2005년 8월부터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전라북도 의료진 및 전국 학생들과 함께 의료 선교 봉사 팀을 구성하여 스리랑카의 누와라 엘리야와 헤튼(인구 120만 명의 인디안 타밀 지역)에 정기적인 방문 진료를 하고 현지의 의료진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강화함은 물론 소외된 지역의 진료 및 다양한 의료 장비를 통한 검사와 진료 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활동은 전주시의사회 및 전라북도 의사회의 도움을 받는다.

이석재 원장은 특히 스리랑카의 인디안 타밀 족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타밀 족은 인도 서남부 타밀라주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거대 규모의 홍차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강제 이주된 인디안 타밀들이 운집해 있다고 한다.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에 정치적 갈등에 그 어느 누구도 자기의 국민으로 받아드리기를 거부 받은, 그래서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ID마저 없는 이들이 대다수. 이석재 원장은 현지 의사와 교인들, 농장 매니저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그들과 함께 지역의 발전을 그리고 국민들의 계몽을 이루고자 노력했으며,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의료 봉사 및 장비 지원을 진행했다. 또한 국내 의료진과 현지 리더들과의 꾸준한 만남을 통해 사고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시작은 팀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차츰 다녀온 학생가족의 입 소문을 통해, 어찌 아시고 자녀들을 보내주시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이제는 쉽게 팀을 이루어 학생들이 함께 갑니다.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시곤, 소개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열흘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페이스페인팅, 위생교육, 아트 풍선 놀이 등 학생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해내는 모습을 보면 가슴 뿌듯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20차를 향해가는 여정에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마 거짓일 것이다. 이석재 원장은 현지인들과 협업해 스리랑카 장학 사업을 함께하고 있는데 그 장학금이 온전하게 이용되지 못하고 변칙운영으로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로 인하여 스리랑카의 전반적 사역이 좌초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스리랑카와의 관계와 지금 펼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더 굳건하게 되리라 믿고 있다. 이것이 오는 1월 진행하게 될 20차 방문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다.


일상에서 체험한 기적 같은 순간들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참 잘 해내더군요. 책임감을 가지고 해낼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좋은 구성이 나오죠. 제가 맡아서 했으면 매번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스리랑카 사역이 2~3년이 지나서인가요? 하루는 한 학생이 ‘점심시간에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이 점심을 굶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학생은 우리의 비싼 점심을 나누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팀원들도 간단한 빵으로 요기를 하는 대신 많은 빵을 구입하여 대기 환자들에게 나누었죠. 예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奇蹟)을 체험한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뒤부터 그 ‘점심의 기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체류기간 숙식도 현지 교회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며 해결함으로 현지 교회의 재정을 후원하고 팀원들의 현지인과의 교제를 확장함으로 일거양득의 수확을 얻게 되었답니다. 이것 또한 같이한 팀원의 제안으로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성과 이었죠. ‘양철 지붕의 동거’라고 할까나요?”

크리스찬으로서 그는 초대교회의 기적을 종종 생각한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 안과 팀과 함께 백내장 수술을 하던 어느 날 현지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가 찾아와 진찰을 받았는데, ‘아하! 이것이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이구나 하는 현장을 보게 됐다.

“현지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많은 경우가 시력이 온전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백내장 수술은 개인 맞춤형 수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렌즈가 구비되지 못한 현지 수술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생긴 일인데요, 어느 날 현지 안과에서 수술을 받았던 환자가 찾아와 시력을 측정하고 검안을 하던 선생님이 냉큼 자기가 썼던 안경을 벗어주는 현장을 보았어요. ‘자기는 예비로 가지고 온 안경이 있으니 내 것을 쓰라’며 자기의 안경을 건넸고, 그 앞이 보이지 않던 환자는 잘 보이니 기뻐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눔의 기적! 그게 바로 예수님이 소경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시며 이루신 기적이 아닐까요?”

평생 걷지 못하리란 이야기를 듣고 앉아 지내던 아이를 걷게 했던 일화도 전했다.

“어느 날, 진료를 하고 있는데, ‘Club Foot deformity(내첨반족)’을 가진 몽고리즘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신의 저주로 못 걷는 아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컸던 겁니다. 그래서 걷지 못한다고 말이죠. 걸음마도 배우지 못하고 업혀만 다닌다고…. 그래서 걷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게 아닌 것’을 아니까, 그저 걸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을 뿐인데 오랫동안 걷지 못한 아이가 걷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그 모습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고가의 의료장비인 까닭에 수많은 수술 장비를 세관에 압수당했던 적도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수술을 하기로 한 그 날에 딱 맞추어 도착한 일도 있다. 모두가 기적 같은 경험이었다. 이 원장은 그것이 바로 “일상에서 체험하는 기적” 아니겠냐고 말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헤어질 때, 꼭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하는데 두고 오는 것이 눈에 밟히지만, 다음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안도가 된다. “이번 만남에의 보람과 성취감, 그리고 또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감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도 했다.

“1차, 2차 스리랑카 방문에서는 저는 조력자에 불과했어요. 단장으로써의 그 시작은 오히려 ‘마산 영광제일교회’ 분들이 해주셨죠. 류영근 장로님을 비롯해서 강태선 목사, 정은배, 이재은, 정주미, 정영택 선생님, 그리고 자녀들을 믿고 맡겨주시는 부모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2011년부터는 몽골의 제국 당시 수도인 허르허름에서 한국유학중인 몽골 유학생의 요청으로 현지 국립 병원과의 협력을 통해 매년 추석 연휴를 맞아 5~6일간씩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 덕분에 그 도움의 손길을 지속해왔다. 필리핀과 캄보디아 등 응급 재난 상황이 생기거나 현지의 요청이 오면, 의료봉사 활동을 나갔다.

스리랑카의 의료 환경 및 경제적 사항을 고려해 현지 및 한국에서 심장병 수술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간단한 수술을 하거나 수술비를 지원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한국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초청하여 수술을 진행하여 지금껏 2건의 현지 수술과 17건의 한국 초청 수술이 진행됐다.


의사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따뜻한 세상 만들 것

이석재 원장은 1987년 의사 면허를 따고 의사로서 처음 근무했던, “여수 애양 재활병원”에서 지냈던 시절을 떠올렸다. 나환자촌에서 나환자들과 소아마비환자를 대상으로 재활 치료가 전문인 병원이다. 나환자가 진료의 대상이다 보니 환자이 거주하는 정착촌을 찾아가 진료를 하면서 자연스레 이동진료를 배우게 되었던 때. 이 원장은 공중보건의 3년, 그 시절은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많이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애양원에서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것은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사랑, 나눔, 봉사, 헌신을 직접 보고 느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진료를 하고 나서의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래서 의사가 되길 잘했구나 싶었거든요.”

그 시절 나환자들을 위한 촌락, 정착촌에 계시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진료했다. 이동진료를 배운 것은 지금까지 연계되어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개원을 하고도 이동진료를 통해 무의탁 노인들이나 외국인 진료를 계속해온 것이다.

“이동진료에 필요한 장비는 다 갖추어져 있으니,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뿐이었어요.”

열린 마음으로 참여한 국내 의료봉사 활동의 폭도 꽤 넓다. 전주시 의사회 주관의 ‘교도소 진료’에 참여하고 있으며, 장애우 정보화 센터 이사로서 장애 회원의 권익 및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다각적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섬김과 나눔 선교회 상임이사로서 의료 선교의 네트워크 형성에 노력하며 지역의료인의 인적 자원을 이용, 다양한 사회봉사 참여를 이끌고 있다. 조손 가정의 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2명을 학교로부터 추천 받아 지속적인 장학 사업을 펼쳐왔고 희귀난치병인 뮤코다당혈증 환자와 결연해 12년간 가정 방문 진료 및 복지 증진에 힘쓰기도 했다.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진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길이 참 많잖아요. 나눌 수 있는 사회에서 나눔을 갖춘 리더가 되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의사 사회의 이상향이에요. 그래서 이 사회가 조금은 더 훈훈해질 수 있기를 희망하고요.”

어느 날 밝은 컬러의 바지를 입었더니,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어서 바지를 색깔별로 소장하고 있다는 이석재 원장. 노란 바지와 체크무늬 셔츠가 참 잘 어울리는 미소를 지녔다. 전인적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의과대학의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후배들의 ‘진로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의료 환경을 설파할 때는 더없이 진중했다. 열린 마음으로 즐겁게 봉사하는 스리랑카 봉사는 진료실 안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석재 원장이 열린 마음으로 환자들을 즐겁게 돌볼 수 있기를, 나눔에의 책임의식과 나눈 후의 뿌듯함을 더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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