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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그리고, 여름

  • 연도2018년
  • 수상동상
  • 이름고은지
  • 소속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마취통증의학과

2017년 여름의 절정을 맞는 중복 아침에, 나는 처음으로 이슬이 비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 날은 분만 휴가 첫 날이었고, 튼실이를 만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로 한 날이었으며, 당직으로 내내 미뤄두었던 만삭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침에 발견한 핏자국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만삭사진은 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그 후 몇 시간을 초조하게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고, 불확실한 자궁수축모니터와 초음파를 보며 튼실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말 예상치 못했던 그 날 저녁, 우리 부부는 튼실이를 만났다. 수술방이 떠나가라 크게 울면서 나온 나의 아들, 나의 사랑, 나의 행복이자 자랑이었던 열 달 간의 기다림. 그러나 그것은 내 눈 앞에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떠나는 남편의 발걸음과 함께 하얗게 무너졌다. 정말 하얗게,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하얗다. 믿을 수 없이 하얗게 변한다. 남편의 뒷모습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아기의 얼굴도, 몹시 하앴다.


튼실이는 너무 하얀 아기였다. 혈색소 수치가 5도 채 되지 않았다. 엄마라는 사람은 척추마취 덕분에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튼실이는 많이 아팠다. 아픈 심장으로 3킬로그램이 넘게 뱃속에서 자라났다. 우심실비대와 폐고혈압, 동맥관 개존증, 이유를 모르는 신생아 빈혈, 양뇌실출혈과 불확실한 소뇌출혈이 아기의 진단명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사건들이 그 날 하루에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돌아온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몸부림치는 것, 그리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서서 벌개진 눈으로 모든 처치를 보고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본인이 의사라는 이유로 튼실이가 기관삽관을 당하고 배꼽동맥이 뚫리며 말초 혈관에 카테터가 잡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날을 곱씹어 보면 남편은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두려웠다고 하였다. 튼실이 아빠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적응이 되지 않는데 더 낯선 모습으로 아기와 첫 만남을 가져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다음 날, 튼실이를 만나기 위해 걸음마를 시작했다. 제왕절개를 한 배가 힘이 들어가지 않아 후들거리지만 튼실이를 만나러 들어가는 스무 걸음이 나에게는 절박했다. 휠체어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지팡이를 짚고 남편 팔도 잡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옆을 보니 친정 엄마가 내 곁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식만 보였다. 엄마는 엄마 딸인 나만 보인다고 했다.


그 날까지는 세상에 이렇게 소중한 것이 생길 줄 몰랐다. 한없이 귀하고 아까워서 만질 수조차 없는 것. 유리창 너머에 있는 그것이 나의 아기, 나의 튼실이였다. 튼실이를 정말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눈도 귀도 가린 아기에게 나의 목소리가 괜한 자극이 될까 봐, 가장 반응 없는 허벅지만 만졌다. 남편은 자신의 손이 가장 더럽다며 아기를 만지지 않았다. 아니, 만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아기 시트에 떨어져서 오염이 된다며 내 눈물만 닦아주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심장을 갈가리 도려내는 슬픔과 고통.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지금까지의 행복이 이렇게 한 순간에 바스러져 버릴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기의 생일이 된 출산 당일 밤, 병원 침대에 누워 한숨도 자지 못하며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나를 질투한 거라면, 이건 너무 가혹하다고. 나의 전부가 되어 나의 삶을 온통 슬픔으로 물들게 한 나의 아기, 나의 튼실이에게 이럴 수는 없다고. 280일의 밤을 피비린내 나는 머리, 오물 냄새가 나는 장기, 그리고 고통으로 소리지르는 환자들을 달래가며 나와 나의 알맹이를 지켰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때서야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가 튼실이를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사랑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 느끼는 이 감정도 분명히 사랑이었다. 튼실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 수많은 기억과 감각과 기분, 그 덩어리가 바로 사랑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사랑이 내가 수술방에 데리고 들어왔던 모든 산모들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진통을 다 겪고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가득했던 그녀도, 자궁 경부를 묶고도 아기가 흘러내려서 이미 잃은 아기를 꺼내야 했던 그녀도, 아기를 낳고 출혈이 멈추지 않아 갓난쟁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수술방 침대에서 의식을 잃던 그녀도 모두 나였다. 그녀들의 슬픔은 사랑 때문이었는데 나는 미처 몰랐다.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었음을, 그 사랑과 고통의 깊이를, 짧은 의사 생활 동안 잘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지독한 마음은 아마 그 전에는 알아 보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고귀한 것이어서 막 나온 의사에게는 과분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의 튼실이가 다가와 심장을 두드리며 오롯이 그 사랑을 알려주었다.


수 개월 전 정밀초음파 검사가 있던 날, 아기가 작고 심장은 커 보여서 산부인과 초음파 선생님께서 걱정하신 적이 있었다. 이 진료결과를 남편에게 말하자 분명 문제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튼튼하고 실하게 크는 아기가 되라는 의미에서 튼실이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튼실이는 아빠와 엄마가 모르는 사이에 씩씩하게 9달을 채웠고, 아프다는 신호도 열심히 보내서 부지런히 세상에 나왔다. 우리 부부는 그런 튼실이가 더 건강해지라는 의미에서 좋은 한자를 이것저것 붙여다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제 아기는 튼실이라고 쓰여졌던 날보다 준이라고 불린 시간이 더 길어졌다. 소아청소년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몰라 볼 정도로 커져서 요람에서 방긋거리며 손 인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튼실이, 아니 준이가 있기에 어김없이 돌아온 2018년 여름이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40도를 웃도는 열렬한 더위마저 즐거웠다. 일 년 전, 뜨거운 눈물과 그보다 더 뜨거웠던 사랑으로 맞이했던 그 아기가 우리의 눈을 마주보며 웃어주고, 첫 걸음을 떼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독하게 아름다웠던 여름이었다. 내년 여름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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