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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성인지미(成人之美)

  • 연도2021년
  • 수상은상
  • 이름조석현
  • 소속누가광명의원 가정의학과

의식을 잃는다는 것이 이렇게 평안한 것일 줄이야. 나는 깊은 잠을 자는 것 같았고 백지장 같은 흰 공간에 평안히 맡겨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간 내 몸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빠를 연신 부르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이 천근만근이었고 심한 구역과 함께 숨쉬기도 힘들었다. 119가 와서 들것에 실려 엘리베이터로 옮겨졌을 때 한 번 더 의식을 잃었다.

 

직장에서 달려온 아내는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 들것에 실려 나오는 나를 아파트 현관에서 만났다. 아내의 목소리에 의식이 다시 돌아왔고 아내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의료진들이 몰려왔다. “혈압 64/40입니다,”라고 외치는 간호사의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오십 대에 들어선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개원 초 지역에 선배 의사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야기가 언제까지 일을 할 거냐는 거였다. 벌써 개원을 하고 십여 년 길게는 이십 년이 넘어선 분들이라 당장에라도 그만 두고 싶다는 분부터 육십이 되면 그만 두겠다는 분, 그만 두면 할 게 없다면서 손이 떨릴 때까지 할 거라는 분도 계셨다. 이제 막 개원을 한 나에게는 도무지 공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어느덧 나도 개원을 한 지 십여 년이 지나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오십이라는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젊은 땐 오십이 되면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 뭐든 자신 있는 나이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가장 원숙한 나이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오십이 되어보니 예상과는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이가 든 다는 것이 경험이 쌓여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책임감 또한 많아진다는 뜻이다. 환자들도 단순한 만성질환으로 시작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교과서대로 합병증이 동반되었고 나는 그들의 병과 합병증까지 담당해야 했다. 어디 의사로서의 삶뿐이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분유만 끊으면, 기저귀만 떼면,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대학만 가면 그 다음은 결혼은 잘 할까 등등 인생은 과제의 연속이었다.

 

삼십 대 대부분의 환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젊은 선생님이 오셨네, 하시는 환자분들께 아버님, 어머님 하며 존대를 하였다. 요즘은 내 나이 또래의 환자들이 오면 그들의 나이 든 모습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도 분명 오십 대 중년의 모습일 게다. 어느새부터인가 오십 대 환자들을 만나면 인생의 중반을 살고 있는 같은 처지의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척추는 심하게 휘어 있었다. 심한 척추만곡증으로 그의 등은 에스자 모양이었고 좌측은 심하게 앞으로 들어가 있으며 우측은 그만큼 뒤로 빠져 있었다. 등의 어느 부분도 편평한 곳이 없어서 청진기를 어디에 놓아도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그의 등은 그의 인생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몇 해 전 그는 아내를 잃었다. 아내도 내 환자였다. 해결되지 않는 두통으로 전원 하였는데 결국 뇌종양 진단을 받고 일 년을 투병생활하다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때 본 그의 등은 더 굴곡져 보였다. 나와 동갑인 그는 이제 홀로 딸과 아들을 키워내야 하는 인생의 쓸쓸하고도 외로운, 무겁고도 허전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딸과 아들도 감기에 걸리거나 속이 아프면 진료를 받으러 왔던 터라 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떠나고 아들은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출을 빈번히 일삼았다.

 

그와의 진료는 대부분 아들에 대한 그의 넋두리를 듣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대학은커녕 집에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딸은 달랐다. 엄마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봤던 게 자극이 되었는지 지방에 있는 물리치료학과에 합격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딸에게는 두려움이 있었다. 조금만 아파도 이게 큰 병이 아니냐고 뛰어오기 일쑤였다.

 

언젠가 아들이 진료실을 찾았다. 어느새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디서 자고 생활했는지 그치지 않는 기침으로 병원에 가라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온 눈치였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이였는데 지금의 아이는 영 다른 아이 같았다. 나는 어느새 그의 심정과 동화되어 이 녀석을 어떻게 훈계해야 하나, 어떻게 따끔하게 혼을 내 줘서 정신을 차리게 하나, 진료는 뒷전이었다. ‘아빠한테 잘해야 한다,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너 엄마 가시고 아빠 혼자 택시하시면서 너희 둘 키우시는 거 봤으면 이러면 안 된다등 잔소리를 쏟아내볼까 주저주저하다잠을 푹 자야 한다, 약 잘 먹어라의사가 할 수 있는 말만 하고 돌려보냈다.

 

그 뒤론 그와 만나면 자식 걱정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그의 틀어진 어깨가 더 틀어져 보였고 지쳐 보였다. 한 번은 감기로 병원을 찾은 그의 등에 청진기를 갖다 대고 들리지 않는 폐 소리를 애써 들으려 해 보았다. 그때 내가 들은 소리는 그의 폐음이 아니라 한숨 소리였다.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우나, 인생이 내는 한숨 소리…. 내 청진기는 한 곳에 멈춰 섰고 청진기를 든 내 손은 그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눈치를 챘는지 못 챘는지 알 순 없지만 나는 오십 대의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잘 버티시고 있다고.

 

얼마 전 머리를 짧게 자른 그의 아들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했다. 휴가 중에 진료를 받으러 들렸다고 했다. 제대하면 뭐 할 거냐고 물었다.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보겠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아이고 잘 했네, 잘 생각했네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말이 사실인지 물론 제대하고 나서 지켜봐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내가 아빠인 양 기뻤다.

 

오십 이 되면 삼, 사십대 열심히 살아온 삶의 동력으로 인생이 수월히 굴러갈 거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오십 대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사십 대 이뤄야 할 과제만 보였고 그 이후는 과제의 결과물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인생은 새로운 과제들을 소리 없이 던져주었다. 젊은 시절의 땀과 노력은 다음 단계의 과제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양분이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다시 뛰어보기로 했다. 쇼크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 나는 달리기를 하고 나서 쓰러졌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아나필락시스였다. 알 수 없지만 어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이 몸에 들어왔고 그것이 달리기를 하는 동안 빨라진 혈액순환을 통해 온 몸에 퍼진 것 같다. 달리기를 마치자마자 손과 발이 붓고 곧이어 얼굴과 입술이 붓고 이내 의식을 잃었다. 나는 달리기를 다시 해서 내가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또 쓰러지면 어떡하나 두려움이 일어났지만 그 사건이 오십에 접어든 내게 통과의례이었기를 확인하고 싶었다. 인생의 전환기에 잠시 멈추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돌아보는 계기가 필요했던 거라고 굳이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려면 나의 쓰러짐은 신기하게도 일회적이고 반복되지 않는 사건이어야 했다.

 

그래서 다시 달려보기로 했다. 워밍업을 하고 서서히 속도를 높이며 예전과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중간 중간 맥박을 만져보며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확인했다. 마지막 코스에서는 호기를 부려 전심전력을 다해 달려보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 달리기를 마치고 벤치에 누워버렸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숨은 몰아쉬었지만 아나필락시스의 증상은 없었다.

 

그때 서쪽 하늘로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이 보였다.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다시 삶을 산다면 저 아름다움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 아름다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내가 돌보는 환자들의 삶도 아름다워야 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내가 돕는 것이 내 인생의 의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성인지미(成人之美)라 했던가. 타인이 아름다운 삶을 이루도록 돕는 것, 오십 이후에 이 정도 삶의 목적을 깨닫게 하려고 쓰러진 것이라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내일 또 다시 저 해가 뜨면 인생의 과제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환자들의 삶을 응원하러 진료실로 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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