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눈물의 결혼식
- 연도2006년
- 수상동상
- 이름염창환 조교수
- 소속관동의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그날은 내가 맡은 환자의 아들이자 내 지도학생의 결혼식 날이었다. 내 지도학생은 아버지가 암 환자, 그것도 말기 암 환자였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을 만큼 그는 공부 잘 하고 착실하면서 무난한 학생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외래에 찾아온 학생은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서 상담해주기를 원했고, 그 분에게 입원 치료는 필요한 투병과정이었다.
환자는 원래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로 치료받다가 3년 전 간암이 발생하였다. 색전술, 사이버 나이프, 항암제 등의 치료를 계속 하였으나 그 힘든 치료과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암의 진행속도는 멈추기는커녕 하루가 다르게 점점 빨리 진행 돼가고 있었고, 우리 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는 심각한 폐전이로 인하여 인위적인 산소 공급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부친을 입원시키고 오후 회진을 돌때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깡마른 그 아버지는 힘겨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교수님, 제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 아세요. 장성한 제 아들놈의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며느리 될 아이도 참 참한 아이인데 저로 인해 결혼을 미루고 있어요. 손주를 보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은 보고 싶네요… ”
그리고 나서 그 며칠 후 지도학생이 청첩장을 가지고 찾아왔다.
“교수님 힘들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이렇게 그냥 보내드릴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아버지의 갑작스런 상태 악화로 인해 서둘러 결혼 날을 잡았고,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예식장도 병원과 가장 가까운 김포공항 터미널로 잡아 급한 결혼식을 치루려 한다고 그렇게 애원하는 학생의 간절한 청을 들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환자분의 상태는 여느 말기 암 환자들처럼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심한 폐 전이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24시간 산소 공급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혼식 당일 참석이 불가능 하였고, 설령 무리한 강행을 하여 참석을 한다 하더라도 잘못되면 환자의 생사가 불분명 해지는 최악의 사태가 생길수도 있었다.
그러나 말기 암 투병중인 아버지를 위해 서둘러 잡은 결혼 날이기에 아버지를 꼭 참석시키고 싶은 아들의 간절한 소망과 장성한 아들의 결혼식을 보고 싶은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던 나는 2명의 전공의와 함께 팀을 구성하여 산소 호흡기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결혼식장을 찾았다.
새로운 인연이 탄생된다는 기쁜 기대감에 부풀어 있어야할 결혼식장은 내내 침체된 분위기였다. 환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결혼식 내내 보여주었다. 비록 숨이 차서 기력이 달려서 걷거나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앉아 있었지만 노래가 나올 때는 숨을 몰아쉬면서 누구보다도 크게 불렀다. 환자 옆에서 환자를 안정시키려고 지켜보는 나에게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그런 초초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결혼식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아버지는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진 신혼부부가 투병중인 그를 위하여 작성한 영상 편지를 읽어 줄때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었고, 참석했던 모든 하객들 역시 함께 숙연해지고 말았다.
“암 과의 힘들고 어려운 투병 중에도 이렇게 저희를 축하해 주러 나와 주신 아버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버님의 은혜에 그동안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못하였습니다. 비록 힘든 순간이지만 저희들이 끝까지 지켜 드릴 테니 힘내세요. 아버님 사랑합니다.”
초인적인 힘으로 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보던 환자는 결국 폐백은 볼 수가 없었고, 그 시간 예식장내의 다른 공간에서 산소를 공급 받으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교수님 저 잘했죠”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다는 흐뭇함을 환자는 그렇게 표현을 하였다.
일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날이여 할 결혼식이 비록 눈물의 결혼식이 되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나타난 감동의 순간임에는 그날 참석한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분은 아들의 결혼식 그 1주일 후 힘들었던 이곳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호스피스 의사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그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해 주는 의사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할일이 없는 의사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가장 할일이 많은 의사일 수도 있다. 내일이면 늦을지 모르는, 어쩌면 오늘 임종할 지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그러나 그 죽음이 아름다울지 슬플지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 어떻게 비칠 지에 따라 다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던 그들 부자는 내게 진정한 부모자식간의 정이 무언지를 알려주었고, 한편으론 그동안 내가 잃어버려야 했던 많은 환자들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오늘도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다 떠나간 또 다른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내 이름 석 자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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