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의사는 아니지만
- 연도2013년
- 수상동상
- 이름최영훈
- 소속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클리닉
진심으로 억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이코패스환자들의 경우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태연히 거짓말과 범죄를 일삼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왠지 그에게선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저를 의사로서 믿어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진료해서 답을 드리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그럼 선생님의 약속만 믿고 이곳에 몸을 맞기겠습니다.”
이렇게 A의 입원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그와 장시간 면담하고, 평소 병실에서의 생활 태도를 꼼꼼히 기록하였고 임상심리검사도 다시 시행하였다. 면담을 거듭하고 거듭하여도 그에게서 크게 병리적인 징후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입원 수일째의 일이었다. A가 허리통증을 호소해 타정형외과로 외부진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보호자들은 화를 내면서,왜 허락도 없이 환자를 외부에 내보내느냐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잠시 후 우리 병원 사무장도 오히려 A를 절대 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직원들을 야단치는 것이었다.게다가 “원장님이 경험이 부족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사무장들이 관리하는 환자들은 나름의 규칙이 있어요. 그걸 안따르면 이 업계선 사장당해요!”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환자가 물건인가, 관리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바로 보호자들에게 전화하여 환자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게 있으니 와 주십사고 요청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안오고 며칠 후 처음에 환자를 모시고 같이 왔던 타병원사무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A가 문제가 많은 환자라 의료진을 힘들게 하는 것 같으니 다른 데로 전원을 시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망치처럼 때렸다. 내가 지금 퇴원시킨다면 A는 평생 병원을 전전하면서 다시는 바깥 세상을 구경도 못해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닙니다. 그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끊겠습니다.”
사건의 전모를 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 처음 입원했던 병원의 주치의를 수소문하여 상황을 물어 보았다.
“처음 내원시 저도 가족들 분위기가 수상쩍어 입원을 거부했더니 이곳 사 무장까지 나서서 ‘진료거부’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해서요...”
더욱더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갔다. ‘어찌해야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가족들 4명이 동의하고 질병임을 인정한 진단서, 검사서도 있으니 내가 퇴원시킨다고 해도 다시 어딘가에 입원시킬 것은 분명하고...’
A를 돕고 있다는 지인들과 연락을 해보았더니 변호사에게 여러번 찾아갔으나 서류상 하자가 없어서 어려울 것 갔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하였다.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았다.‘ 퇴원을 시키면 그들은 병원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다시 붙잡아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시킬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일에 직접 관여한 건 아니니 내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해맑음을 잃은 오래된 생선 같은 눈빛의 중년 남성이 보였다. 회진을 돌기 위해 병실로 들어섰다. A가 나에게 다가왔다. 요즘 들어 약간 자포자기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점점 믿고 의지하며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있다. 길 잃은 아이가 길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을 만났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눈빛을 본 순간 심장에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길을 꼭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아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를 상의하였다. 여러 차례 의논 끝에 판사에게 ‘인신보호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 난 후에 다시 법원이 정한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아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또 그들이 A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퇴원시키자마자 ‘자의’로 재입원을 받아서 본원에서 그를 보호하기로 하였다. 일이 톱니바퀴처럼 진행되는 듯하다가 한 직원의 실수로 보호자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병원에 찾아와 본색을 드러내며 광분해 날뛰기 시작하였다. 환자의 누나, 남동생, 그들이 데리고 온 여러명의 사무장들과 건장한 여러명의 남성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소란을 피웠고, 나에게 온갖 협박을 해댔다. 그들은 프로였다. 고성을 지르고 갖은 압박을 가하면서도 병원 물건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오직 엄청난 공세의 ‘언어폭력’을 퍼부을 뿐이었다. 너무 정신없고 경황없어 그냥 도망치고만 싶었으나,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나는 원장이다. 이곳의 책임자야.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그 후 그들은 보건소에 50여가지 위반 사항을 조작해 민원을 넣는 등 여러 가지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A는 대학병원, 국립병원서 두차례나 정상 판정을 받아내었고, 그들은 모두 구속되었다. 나중에 경찰서에 참고인 조사로 가서 들으니, 그 사무장들이 A를 3년 동안 밖으로 못 나오게 하는 대가로 3억을 받았다는 내막을 알게 되었다. A가 운영하는 사업체는 수백억대 재산가치가 있다는 것도.
그 일은 TV 뉴스에도 나오고, 나에게도 여러차례 방송인터뷰요청이 들어왔다. 친척들과 지인들은 다들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찬 한마디씩 던져주곤 했다.
지나고 나니 아득한 추억이지만 당시의 긴박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곤 한다. 특히 왜 이런 일을 사서 하냐는 사무장의 지적이 가끔 머릿속에 맴돈다. 왜 그랬을까? 사실 나는 義士가 될 위인은 아니다. 내가 개원한 것도 솔직히 말하자면 가족을 부양하야 겠다는 평범한 동기에서였다. 그런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했을까?
아마도 단지 나는 義士가 아니라 醫師로서 해야 될 의무를 했을 뿐이리라.
길잃은 아이를 경찰서에 신고해주는 일반 시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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