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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가지 않은 길

  • 연도2017년
  • 수상금상
  • 이름심병길
  • 소속횡성중앙의원 외과
의과대학 동창회 명부가 도착했다.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그만큼의 세월을 퇴적(堆積)한 명부가 두툼하다. 오랜만에 졸업 앨범을 꺼내본다. 앨범 속 청춘은 아프면서도 가슴 먹먹하게 그립다. 지금은 늦은 가을, 땅거미 어스름한 저녁이다. 내 앞에는 많은 길들이 놓여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한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걷고 걸어 이곳까지 왔다. 지금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잘 도착해 있는 것일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 중에서-

사는 터도 인연이란 게 있나보다. 외과 수련을 마치고 서해안의 작은 도시에 근무하며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내가 강원도에 사시는 어떤 분께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그분은 그때 낮잠을 달게 주무시던 참이었다. 단잠을 깨운 아내는 죄송한 마음에 전화를 끊을 적당한 말을 찾다가 ‘어디 좋은 개업자리 있으면 알아봐주세요’ 했는데, 잠결에 들으셨던 그분이 어떻게 기억을 하셨는지 며칠 후 ‘자리가 있으니 한번 와보라’ 연락을 주셨다. 바람이나 쏘일 겸 나선 그 길로 나는 H읍(邑)에 개업을 하게 되었다.

H읍은 강원도 서쪽 중간쯤에 위치한 인구 2만 가량의 소읍(小邑)이다. 병원의 옥상에 올라서면 햇빛 가득한 광장이 내려다보이고, 노란 국화로 장식된 원형의 로터리를 중심으로 작은 포장도로 셋이 방사상(放射狀)으로 뻗어 읍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읍을 울타리처럼 두른 산의 낮은 등줄기가 보이고, 가끔씩 근처 비행장에서 뜨고 내리는 전투기가 향토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떠있는 파란 하늘을 쏜살같이 가로지르곤 한다. 개업할 즈음엔 북쪽 지천(支川)을 댐으로 막아 제법 큰 호수도 생겼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그 지독한 일본 상인들조차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짐을 쌌던 곳이라 했다. 이곳의 배타성(排他性)과 폐쇄성(閉鎖性)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나는 겉으로는 순해 보여도 은근히 까탈스럽고 괴팍한 면이 있다-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놀랍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H읍과 나는 많은 시간을 함께 부대끼며 둥글고 순해진 부부처럼 이제는 서로 익숙한 풍경(風景)이 되었다. 

H읍에서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나는 H읍에는 H읍과 세상을 구별 짓는 무언가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김승옥의 소설 무진(霧津)의 안개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으나 뚜렷이 존재하여 H읍을 둘러쌓으며 세상으로부터 H읍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보았다. 

일 년에 두어 번 친한 동창들과 서울에서 만났다. 그날은 몸살이라도 걸렸는지 으슬으슬 한기마저 들었다. 동창들은 강원도 산골에 묻혀 사는 내가 부럽다며 이런 저런 덕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농담이라도 “그럼 나하고 바꿀까?”하면 실없이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스스럼없이 흉금을 트는 사이지만 그날은 어찌된 일인지-아마 감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만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나는 갑자기 그 고립무원(孤立無援)한 H읍이 그리워졌다. 그러자 문득 H읍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는데 바로 그 때 H읍을 안개처럼 감싸고 있던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많은 사람들 속에 섞였어도 금방 눈에 띄는 얼굴 같았다. 그것은 모든 웅성거림을 헤치며 들려오는 또렷한 목소리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방(方)원장님께서도 내가 본 ‘그것’을 보신 것일까? 아니 그보다 방원장님은 이미 보셨는데 내가 이제야 그것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 더 맞는 게 아닐까? 나는 어쩌면 이번에 그동안 방원장님께 가져왔던 오랜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보건의 2년차 때 정선군 고한(古汗)읍의 보건지소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때 고한성심병원 방덕환 원장님을 가까이 뵐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는 그분이 왜 그곳에 계시는 지 정말 궁금했다. 명문 S의대 출신의 정형외과 전문의시고 미국에서 공부까지 하신데다 아프리카 등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드시던 분이 왜 그 시커먼 탄가루 날리는 오지(奧地)에 갇혀 사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분의 지식과 경험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대한민국 땅덩이가 오히려 좁을 텐데 그분은 귀양지 같은 그 곳에 스스로를 유배(流配)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그분은, 병원 꼭대기에 마련된 숙소에서 주무시고 아침이면 일어나 회진을 도셨다. 그리고 종일 구부정하니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시거나 수술을 하셨다. 저녁에 다시 회진을 도시고 밤이 되면 숙소에 올라가 주무셨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회진을 돌고 종일 구부정하니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그렇게 저녁이 되고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되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한 곳에 아주 오래 머물거나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때 서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것 때문에 새들은 수천 킬로를 쉬지 않고 날았고, 연어는 캄차카 반도와 베링해(海)를 지나 강을 거슬러 올랐다. 서울이든 제주도든 아프리카든 방원장님께는 중요하지 않았다. 

방원장님께서 ‘보령의료봉사상’을 받으신 후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1976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4년간 의료 봉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탄광촌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탄광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광부는 수백 명인데 의사가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딱한 마음에 딱 1주일만 봉사하기로 했는데 그게 30년이 되었다.” “전쟁 같은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서울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광산촌을 떠날 수 없었다.” 또 다른 신문의 기사다.  “...그는 ‘나도 환자들도 이 검은 땅의 전성기와 쇠퇴기에 젊은 날을 바쳤기에 뭉클한 형제애가 있다’며, ’한명의 환자가 있다 해도 끝까지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그를 붙잡은 건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탄광촌 주민들이었다. 마을 여인네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의사 선생님 드시라’며 김치와 머루와 떡을 날랐고...”

‘그것’은 H읍에서, 소나 닭이나 배추나 더덕을 키우는 듯 사람들을 키워냈다. H읍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지어주는 밥을 먹고, 그것이 마련해 준 집에서 잠을 잤다. 아이들도 그것이 보내주는 학교에 다니다가, 졸업을 하고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갔다. 그리고 명절이면 저와 꼭 닮은 아이를 안고 H읍에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이 자라 청년이 될 동안 어른들은 늙어서 노인이 되었다. 손주 녀석이 이갈이를 할 때 노인들도 이를 뽑고 틀니를 끼웠다. H읍에서 이 빠진 손주를 이 빠진 할아버지가 안고 웃었다. 

H읍에서 20년이 흘렀다. 정말 순식간이다. 이제는 이곳의 산과 들과 사람들은 나의 일상(日常)이 되었다. 집과 병원을 특별히 구별 짓는 시간의 경계도 없어졌다. 환자분들의 어디어디가 아프고 불편하다는 말이 마치 평소의 대화처럼 들린다. 긴장감이 사라진 것은 의업(醫業)에는 치명적이지만 나는 지금의 편안함과 녹록함이 좋다. 

나는 이제 내가 걸어왔던 길을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방원장님이 걸으셨던 길과 또 다른 몇몇의 길도 생각해 본다. 길은 넓거나 좁거나, 화려하거나 초라하거나, 혹은 평탄하거나 거칠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그런 것쯤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 길은 오직 그들만이 걸었던, 세상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20년 된 빛바랜 병원 대기실에는 정다운 얼굴들이 삼삼오오 앉아 계신다. 굽고 비틀어진 허리와 마른 나뭇가지 같은 팔다리는 그분들의 가난하고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말해주지만, 그들은 낡고 구부러진 육신이나 고단한 삶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천진(天眞)하고 난만(爛漫)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정말이지 꽃송이가 몇 무더기 피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마음 한 편이 등불을 켠 듯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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