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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그럴 수도 있다

  • 연도2018년
  • 수상금상
  • 이름이재언
  • 소속뉴프라임연산병원 신경외과

담을 쌓는다.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담장이 높아진다. 때로 허물어지기도 하지만 그 만큼의 높이만큼 담을 쌓는다. 언제나 그런 식이다. 담장 한켠에 조그만 문(門)이 있기도 하다. 타인(他人)의 문(門)은 좀처럼 넓혀지지 않는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새삼스럽다.


의사는 더 이상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다. 며칠 전 신문 한 구석에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필리핀 의사의 모습이 실렸다. 진료실 의자에 앉은 채로 두들겨 맞는 사진 한 장이 충격적이었다. 진료실에 CCTV를 설치하는 필리핀 의사들의 수가 점점 는다는 짧은 기사가 세상의 삭막함에 점(點)하나를 보탤 뿐이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응급실에서 폭행당하는 의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의사도 그저 직업인 일 뿐이라는 자조적인 말로 위로해주던 선배가 떠올랐다.


십여 년 전이다. 응급실로 의식불명의 환자가 들어왔다. 동공이 열렸고 몸이 뻣뻣했다. 강한 자극에도 꿈틀거릴 뿐이었다. 응급상황이었다. 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지 내 인공 튜브를 가까스로 삽입하고 뇌 CT검사를 했다. 심한 뇌출혈을 동반한 뇌부종이었다. 뇌 CT필름을 뷰박스에 걸고 보호자들을 불렀다. 뷰박스에 비친 필름으로 온 시선이 향했다. “뇌출혈이 심한 상태입니다. 동공이 열린 상태이고 위험합니다. 뇌부종을 가라앉히는 약을 써보겠지만 위독한 상태입니다.” 가족들이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수술은 안 됩니까?” 한 보호자가 물었다. “거의 가망성이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때였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누군가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강타했다. “의사라는 게 고작 한다는 소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그러고도 니가 의사야!” 하면서 재차 나의 뺨을 때렸다. 막무가내였다. 나는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갔다. 아수라장이 된 응급실을 한참 뒤에야 선배의사가 수습했다. “그럴 수도 있다”며 나를 위로했지만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이 병원에서는 수술 안하고 시술로도 낫는다는 얘기를 들었어, 나도 해당이 되는가?” 다짜고짜 물었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다른 병원에서 허리 협착증이라 진단 받았어. 수술하라는데 꺼림칙해서 말이야. 듣자하니 여기서 주사 맞고 나았다 해서 찾아왔어.” 할아버지가 건넨 CD속 영상 사진은 협착증이 꽤 심했다. 시술 받는다고 다 낫는 것은 아니고 환자마다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단한 절차에 따라 시술 동의서를 받고 할아버지를 치료했다. 시술 후 할아버지는 만족하셨다. 고맙다는 인사말도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진료실 문 밖이 소란스러웠다. 고함소리가 났다. 진료실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그 할아버지였다. “이 사기꾼아, 시술 받으면 낫는다더니 도로 아프잖아. 아무 효과도 없다. 내 돈 내놔.” “병원비만 비싸게 받고 순 사기야. 어쩔 거야. 내 돈 내놓으란 말이야!” 어안이 벙벙했다. 차근차근 다시 설명하려 했지만 듣지도 않았다. 생떼를 썼다. 결국 그 할아버지는 돈을 받아갔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아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나는 모른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았으면 나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여겼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고소장이 날아들었다. 민사소송 건이었다. 나에게 수술 받았던 환자였다. “어! 무슨 환자더라” 기억을 추슬렀다. 5년 전이었다. 허리가 아프다 점차 하지 방사통이 심해져 개인 클리닉에서 통증주사 맞고 버티던 환자였다.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했다. 부랴부랴 내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토요일 오후였다. 급히 MRI검사를 시행하였다. 심한 디스크 탈출증으로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보호자와 환자한테 충분히 설명하였고 일요일 넘기고 월요일에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 후 환자는 잘 걸어 다녔고 통증도 없어졌다. 소변장애가 약간 남기는 했으나 비뇨기과 치료를 받았다. 신경인성 방광증 진단 하에 재활치료에 들어갔고 환자가 퇴원할 때는 나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그리고 한 번도 외래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5년이 지나서 환자가 아니라 고소장이 날아들었다. 소변장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였다. 어이가 없었다. 늦게 수술해서 장애가 남았으니 의사의 과실이라는 내용의 고소장이었다. 법적 소송 후 내게 과실이 없다고 판결이 났다. 누가 부추겼을까? 돈 때문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고 수없이 되뇌며 나의 담은 높아만 갔다. 어찌 그럴 수 있냐고 물을수록 “그럴 수가 없다”는 나의 담벼락은 견고해졌다. 나는 방어적이 되었고 예민해졌다. 담장 안에 나는 갇혔다. 타인이 들어올 문은 더 좁아졌다. 언제나 묻는 말 ―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럴 수는 없는 거야 ― 속에 나는 묻혔다. 나는 차츰 사람이 싫어졌고 때때로 믿지 않았다. 환자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어쩌다가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나의 담벼락은 한 번씩 무너지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담벼락을 무너뜨린 것은 또 다른 나의 환자들이었다. 수술 후 염증이 생겨 고름을 짜내고 오랫동안 항생제 주사를 맞았지만 그 환자는 나에게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한 그 환자는 차츰 병세에서 회복했고 건강도 되찾았다. 가끔 외래에서 “원장님 젊어지셨네요” 하고 웃으며 농담도 건넸다. 그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나의 뺨을 때린 그 보호자는 가망 없는 그 환자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죽을 만큼 사랑했을 것이다. 그에겐 사랑이 전부였을 게다. 나의 뺨을 때릴 수도 있었다. 꼬장한 그 할아버지는 꼬깃꼬깃한 돈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얻은 용돈이었을 게다. 자식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병원에 와서 기어이 돈을 찾아갔다. 자식을 너무 사랑했던 게다. 누군가 부추겨 고소를 하게 되었지만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 게다. 고소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미안해할 게다.


나는 ‘그럴 수는 없다’라고 고집하는 것보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한 생각 바꾸는 것이 평온임을 안다. 그럴 수도 있는 게 따스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조금씩 더 인생을 알아갈수록 ‘그럴 수도 있다’는 게 말없이 다가온다. 만사 그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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