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거주춤하는 사내를 억지로 밀치듯이 할매가 진료실로 들어섰다. 거구인 남 자에 비해 할매는 왜소하여서 서로 어떤 관계인지 의아했다.

“의사 선생님요! 요 녀석이 오래 아팠는데, 살려보려구 데불고 왔소.”

작고 쪼그라든 외모와는 달리 말투는 카랑카랑하였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 아타고 먼 길을 왔다며 힘주어 말하는 양쪽 볼에는 삶의 흔적이 깊게 패였다. 그래도 자글자글한 주름을 타고 수줍은 미소가 묻어났다.

할매는 과거에 실비집을 운영했고, 지금은 해수욕장에서 행상을 겸하여 밤에 는 폭죽을 판다고 했다. 이후 할매를 보면 폭죽이 연상되었다. 이렇게 사람을 대면하는 순간 모종의 추측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이기에 선입견 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고 되뇌곤 한다. 편견은 본질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아들은 미혼의 50대로 흐트러진 장발에 위생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고 악취가 풍겼다. 나의 질문에 대답은커녕 눈맞춤도 안 되는 아들을 바라보는 노모의 눈 빛엔 염려를 넘어 역정을 내비쳤다. 아들은 어린 시절 발병한 조현병이 오래 진 행되었고, 그동안 약물치료 등 의학적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환자의 주 증 상은 인지력과 현실 판단력의 저하로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웠고, 감정의 둔화, 무의욕 등의 음성증상(정상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없어서 문제가 되는 증상)이 갈수록 더 악화되어 스스로 위생관리도 하지 못하였다. 그는 대부분 하 루 종일 누워지냈다. 아직도 일부에선 정신과 치료를 꺼리는 것처럼, 할매는 아 들의 치료를 주저하다가 주위의 많은 권유를 듣고서야 뒤늦게 아들을 병원에 데려온 것이다.

입원 후, 할매는 주 1회 정도 병원에 찾아와서 담당 의사의 면담을 신청하였 다. 매번 아들의 이런저런 상태를 묻고, 왜 빨리 호전되지 않냐면서 막무가내로 따져 곤욕을 치렀다. 한날은 할매의 손에 알로에 음료 상자가 들려있었다. 내심 나에게 주려나 여겼는데, 음료수 선물세트를 들고 나가버렸다.

예상치 못한 응급사태가 터졌다. 할매는 어디서 들었는지 알로에가 조현병에 좋다며 면회실에서 아들에게 180ml짜리 12병을 그 자리에서 모두 마시게 한 것이었다. 나는 아연실색하였다. 할매가 재방문했을 때, 나는 일부러 화를 더 냈다.

“의학적으로 효과도 없는데, 그렇게 알로에 음료수를 한 번에 많이 먹이시면 어쩝니까? 병원에서 큰일 날 뻔했잖아요!”

“알로에가 정신병에 좋다고 하데요. 나이 많은 사람이라서 선생님처럼 배운 것도 없이 무지하오. 고마 좀 봐주이소~.”

무슨 대수냐는 듯 할매는 멋쩍게 웃었다.

“인제는 선생님 말을 잘 들을라요. 아들 녀석에게도 의사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하라고 신신 당부를 해두었어라.”

할매는 미안했는지 스스로 이런 다짐도 했다.

입원한 지 2개월가량 지난 어느 오후였다. 할매가 검은 비닐봉지를 불쑥 내밀 었다. 그 속에는 벌레 먹었는지 구멍 난 복숭아가 몇 알 들어 있었다. 갑자기 할 매는 소주나 한잔하자고 말했다. 뜬금없고 어이없었다. 이렇게 뜸을 들이더니, 할매는 나에게 아들의 기초생활수급자 전환 신청을 부탁했다. 할매는 큰 부탁 이라 생각하였는지 나가면서 연거푸 한참 어린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 였다.

“아이고! 이런 어려운 부탁을 하는데, 우리 예쁜 선생님이랑 밖에서 쐬주도 한 잔해야 하는데~.”

하소연 같은 말꼬리도 데면데면 할매를 따라나갔다. ‘아, 할매가 매주 나를 찾 아온 목적이 이거였구나!’ 하면서도, 속으론 공치사들이 살가워서 한참 웃었다. 환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고, 따라서 입원비 등 의료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할매는 발걸음이 뜸했다. 늘 부담이 컸던 자식의 치료비용이 해결 되었으니, 이제 병원에는 딱히 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할매 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서 원무과 직원을 통해 할매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보 호자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 할머니에게 연락했더니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다. 알아보니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결국 몇 주 후, 할매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원무과에서는 법적으로 환자를 입원시킨 유 일한 보호자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환자도 우선 퇴원 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살 곳도 없고 다른 보호자도 없는 환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환자를 설득하여 자의입원으로 전환해, 치료와 간호 관리를 지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환자가 무슨 연유인지, 원무과 직원이나 간호사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 것이었다. 자의입원을 하려면 자의입원에 동의하고,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협조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 의사 말은 듣는 편이라서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자의입원을 위해서는 신분증도 필요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환자의 신분증 재 발급을 위해 우선 증명사진 촬영을 하러 사진관에 데려갔다. “사진기를 정면으 로 바라보세요~!”라는 사진사의 주문까지, 나는 사진사의 말을 그대로 상기시 키며 일일이 그의 자세를 고쳐주어야 했다. 인지기능이 저하된 환자는 그래도 내 말에는 곧장 반응을 해주었다. 동사무소에도 동행하여 신분증 재발급을 받 아왔다. 이날은 다른 업무는 미뤄 둔 채, 원무과 직원과 함께 나선 것이다.

어느 날 밤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난데없이 백사장 한켠에서 폭죽이 터졌다. 그 순간 불현듯 그 폭죽 할매가 떠올랐다.

아마도 할매는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건강에 자신감을 잃었을 테고, 하나밖 에 없는 피붙이가 자신이 죽고 나면 어떻게 살지를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백방으 로 알아본 후에야 비로소 그토록 꺼리던 정신병원에 아들을 억지로 데리고 온 것 같다. 양약이 독하다며 자신의 아들에게는 약 좀 살살 쓰라며 닦달하던 그 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고집을 꺾고 타협을 했을 것이다. 나에게 자주 찾아와 서 얼굴을 내비친 이유도 혹시나 수급자 전환이 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능글맞던 할머니의 표정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자신 의 질병에도 아들을 지키기 위해 차마 죽지 못하고, 견디고 견디어 온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이젠 아들을 입원시키고 걱정을 떨쳐 안도하시려나? 그 모정이 차 가운 밤하늘에 점멸하는 폭죽처럼 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