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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베릿내

  • 연도2005년
  • 수상대상
  • 이름이중근 원장
  • 소속연세가정의학과의원


할머니는 이따금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그때마다 앙상한 갈비뼈가 드러나 할머니 가슴이 새 조롱(鳥籠) 같아 보였다. 할머니, 하고 어깨를 흔들자 가늘게 눈이 뜨이는가 싶더니 이내 눈꺼풀이 떨어졌다. 퍼뜩 임종이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아들을 눈짓으로 불러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입을 떼자 아들 역시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갑자기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생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덩달아 숙연해지던 중 맨 처음 왕진 왔을 때가 생각났다.
일 년 전 삐걱이는 양철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예기치 않은 어떤 냄새 때문에 감전된 듯 발이 땅에 붙었다. 이게 무슨 냄새더라, 분명 아는 냄샌데 얼른 짚어낼 수 없었다. 그 매캐한 냄새는 내 코를 간질이다 서서히 가슴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온 이유도 잊은 채 홀린 듯 냄새의 근원을 좇아 초가(草家)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제주도 말로 굴묵 떼는 냄새였다. 아궁이 속에 벌건 혀를 낼름거리며 솔가지들이 타고 있었다.
문 씨 할머니는 굴묵 떼는 냄새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돌아 앉자 마자 밥 달라고 성화를 부리거나 가스 불에 국 앉힌 것을 까먹어 냄비를 태우고, 그도 모자라 다리의 화상으로 의사를 부르는 것은 모두 흔한 치매 증상이었다. 시커멓게 그을은 벽을 걷어내고 배선을 다시 까는 전공(電工)들이 새삼 아궁이를 지피는 사정을 설명해줬다. 흙손질 하는 미장이처럼 다리에 화상 연고를 바르며 나는 할머니를 슬쩍 떠봤다. 오늘이 몇 년 몇 월 몇 일이냐는 질문에, 무더위로 잠을 설친 게 엊그젠데 할머니는 무자년 섣달이라고 했다.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에는 ‘곤흘’이라고, 이미 폐동(廢洞)된 옛 마을을 가리켰다.
그 무렵 시시때때로 굴묵 지피는 냄새 같이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는 것들이 나를 찾아왔다. 자석에 끌리듯 고향에 내려와 개업한 지 어언 십 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판에 박힌 생활에 염증이 나서일까, 사십 줄에 들어선 나이 탓일까? 나는 무슨 소중한 것들을 흘리며 예까지 왔는지 지난 시절을 되살리려 어두운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내 고향 제주시 화북동 서쪽 끝은 베릿내, 멋 없이 그냥 화북천이라고도 하는 작은 건천(乾川)이 자연스레 경계를 이루고 있다. 어릴 적 나와 나의 불알 친구들은 내(川)가 시작되는 곳이 궁금해, 번번이 억새 덤불이나 웅덩이에 가로막혔지만 베릿내를 거슬러 가보곤 했다. 이제 어른이 돼서 기억의 거룻배를 타고 베릿내를, 시간을 거슬러 가보려는 것이었다.
드럼 통에 밤이나 고구마를 굽는 군밤 장수 곁을 지날 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느 가을날 오후가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가 초등학교 사오 학년 때 쯤이었을까? 나는 종일 할아버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조나 수수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수확이 끝난 뒤 쭉정이를 태우는 군불에 덤으로 구어 먹던, 향기롭기 그지없는 고구마 익는 냄새가 여태 나의 뇌리에 남았던 모양이다. 이처럼 내가 기억의 창고에서 한가지씩 꺼내 툭툭 먼지를 털어내는 동안 할머니는 더욱 기억을 잃어갔다. 매번 왕진 갈 때마다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 역력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심지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향해 누궤꽈? (누구세요?), 말을 걸 때도 있었다.
나는 아랑곳 없이 나의 거룻배를 저어갔다. 그러나 과거로의 여행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억새 덤불을 헤치고 웅덩이를 건너 어릴 적 내가 갔던 곳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차츰 두려움이 생겼다. 베릿내, 비가 오지 않으면 울퉁불퉁한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 시시한 2급 지방하천만 해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역사의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별초가 베릿내를 사이에 두고 관군과 최후의 격전 - 우기(雨期)가 아닌데도 베릿내에는 붉은 물이 넘쳐 흘렀다 한다 - 을 벌였던 고려 말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베릿내 하구에는 ‘곤흘’이라는 70여 호 마을이 있었다. 1949년 1월 무장대가 베릿내 상류를 건너던 경찰 쓰리쿼터를 습격하고는 곤흘 쪽으로 도망을 갔다. 경찰은 그날 밤 병력을 총동원하여 곤흘을 찾았다. 진눈깨비가 희끗희끗 날리고 거센 바람이 불던 몹시 추운 날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마을의 남정네들을 모두 모이게 한 뒤 총부리를 들이대 바다로 내몰았다. 사람들 허리에 물이 찰 즈음 경찰은 총을 난사했다. 시체들이 해녀 태왁처럼 물에 둥둥 떠다녔지만 아무도 건져낼 염두를 내지 못했다. 마을에는 석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이른바 초토화 작전이었다. 이날 이후 곤흘 마을은 지도 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나의 철 모르는 거룻배가 여기쯤 다다랐을 지난 겨울 할머니가 삼일 동안 잠 한숨 자지 않고 설친다는 연락이 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가 새된 목소리로 “까마귀 왐쪄, 혼져 곱으라!(까마귀 온다, 어서 숨어라!), 까마귀 왐쪄, 혼져 곱으라!” 소리 지르며 방으로 도망쳤다. 붉은 잉크 한 방울 수족관에 떨어뜨린 듯 저녁 노을이 들창으로 들어와 천천히 방안을 물들이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할머니가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살려줍써! 살려줍써!” 애원했다. 두 내외가 할머니를 붙든 사이 발륨 한 방을 혈관에 찌르자 붕어처럼 파닥거리던 할머니가 스르르 쓰러졌다.
오늘이 4.3 때 곤흘서 돌아가신 아버님 제삿날이고 자신은 유복자라는, 시키지 않은 아들의 말이 아니어도 나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나를 멀리까지 배웅하며 하소연했다. 상(床)에 올릴 수박 - 룸 싸롱에서나 사가는 겨울 수박 - 을 물통에 뒀는데 어머니가 건져다 땅에 묻는 등 별 해괴한 짓을 다한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만세력을 뒤져봤다. 1949년 1월은 음력으로 1948년 12월, 무자년(戊子年) 섣달이었다. 무자년, 어쩐지 무자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해이지 않은가?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 버린 게 아니라 되찾은 건지도 모른다. 내게 굴묵 지피는 냄새나 고구마 익는 냄새 같은 그 무엇인가가 할머니의 기억을 억누르고 있던 뚜껑을 열어 준 것은 아닐까?  단지 그 뚜껑이 덮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 할머니를 혼돈의 수렁에 빠트렸을 수도 있다. 혹은 그 되찾은 기억이 짐 지기에 너무 무거워 대신 사소한 일상의 기억을 내쳐버리는 것일 수도. 그러고 보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그 알량한 기억이 아니라 오히려 망각이 아닌지…, 우리는 모두 조금씩 기억상실자로 건재(健在)한 것은 아닌지….
한 달 전 폭우를 뚫고 아들이 병원을 찾았다.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진 어머니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혹시나 하고 들른 거였다. 불현듯 어떤 정경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낙심한 아들을 차에 태우고 베릿내로 갔다. 베릿내에는 괄~괄~ 소리를 내며 거센 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 말로 ‘내창이 터진’ 것이다. 베릿내와 바다가 만나는 옛 곤흘로 접어들자 비에 흠뻑 젖은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곤흘 쪽으론 똥도 누지 않는다던 어머니였는데 돌긴 단단히 돈 모양이라고 아들이 혀를 찼다. 멍 하니 강 건너를 바라보는 할머니 앞으로 할머니의 어두운 기억처럼 쓸어버릴 듯 물살이 스쳐갔다. 나는 옛날 고문(古文) 시간에 배운 백수광인(白首狂人)이 생각났다. 임은 건너지 말 것이지, 임은 물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으시니. 강 건너 옛 마을 터에서 컹컹 개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가 된 터를 외지인이 개 사육장으로 쓰고 있었다. 그 날 몸 져 드러누운 할머니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마지막 왕진 다음 날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밤 할머니가 종명(終命)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새 한 마리가 조롱을 빠져 나와 표르릉, 하늘로 날라가는 헛것을 봤다. 아들은 육지서 직장 다니는 할머니 손자들이 올 수 있게 이러저러한 팩스번호로 사망 진단서를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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