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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아버지의 어둠

  • 연도2006년
  • 수상은상
  • 이름유인철 원장
  • 소속안산유소아과의원


일요일 아침 의료기 전시회를 참관하기 위해 서울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일주일간 채택된 청취자의 사연 중에서 잘된 것을 골라 다시 들려주는 프로그램으로「어머니의 하얀 얼굴」이라는 제목의 편지가 방송되고 있었다.《온 가족이 한방에서 잠을 자다 동생이 등잔을 차는 바람에 불붙은 석유가 어머니에게 쏟아진다. 곱던 얼굴이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평생 안고 가야하는 아픔을 겪지만 묵묵히 견뎌내며 자식들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여고생이던 나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 창피했고 언제나 멀어지려고만 한다. 미처 챙기지 못한 도시락을 손수 가져오면 매몰차게 거절했고,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차마 교문 앞에 서있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신을 찾고 있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교복이 다 젖는 것을 마다않고 도망치듯 피해 갔으며, 친구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남남인 양 고개를 돌렸다. 나는 기어이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와 공장에 취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숨진 뒤였다. 이미 싸늘해진 어머니의 하얀 얼굴을 보듬으며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 했나 후회하며 한없이 울었다》는 내용이었다.

 애잔하게 글을 읽어가는 진행자의 목소리에 최루가스가 들어있었던지 과천을 지나 양재대로를 가고 있는데 차츰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동대로에 들어섰을 때는 아무리 해도 흐느낌을 참을 수 없었고 눈물이 줄줄나와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엉엉 울고 말았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갔지만 안 그런 척 체면을 차리기에는 감정이 너무 복받쳤다.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알게 된 것은“어라? 나도 눈물이 나네!”하는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철들고부터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었기에 여태껏 나는 눈물샘이 마른 줄 알고 있었고, 울어야할 때 정작 눈물이 안 나오면 어쩐다 하고 쓸데없는 걱정까지 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울고나서 우는 게 이렇게 좋을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한여름 내내 들어 마신 먼지와 티끌이 시꺼멓게 엉겨 붙어 꽉 막힌 에어컨 필터를 물에 설렁설렁 흔들어 말끔하게 씻어낸 양 가슴이 뻥 뚫렸다. 얼굴을 대강 추스르고 출발하여 코엑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다시 눈물이 나와 얼마간을 또 울어야했다. 전시회를 보는 둥 마는 둥 대강 둘러본 후 친구들에게 가는 대신 아버지가 입원하고 계신 시골로 향했다. 차는 앞으로 나갔지만 나는 뒷걸음쳐 오래전 인턴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안과 인턴을 하고 있었다. 병실 회진을 돌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하나의 기억이 퍼뜩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스탭 선생님, 간호사, 실습 학생 등 많은 의료진의 맨 앞을 서야하는 인턴으로서 아무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야 했기에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뻐근하게 아프고 등에는 진땀이 다 났다. 눈 수술을 하여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를 본 것이다. 아버지는 6.25 전쟁 중 철의 삼각지라 불리는 김화전투에서 비행기 폭격을 받았다. 눈이 뜨끔한 것을 느끼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머리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누워있었다. 군의관이 와서 한쪽 눈을 다쳤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며 다친 눈을 포기하면 나머지 눈은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눈에 이상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멀쩡한 몸으로 군대왔다가 어떻게 병신이 돼서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대답했다.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경과가 좋아 별 이상 없이 제대했는데 일 년여정도가 지나던 무렵부터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화투를 하다가 처음에는 사 껍데기와 칠껍데기를 구별 못했고, 시간이 지나자 삼 껍데기와 풍껍데기를 구별 못하더니 급기야는 아무 것도 알아 볼 수 없어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게 됐다는 내력을 자식들에게 짬짬이 들려주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사람이 눈이 멀면 귀까지 먹어야 하는 거라고. 그 건 사지는 멀쩡한데 갑자기 눈만 멀어버린 아버지와 한평생 살아야했던 당신에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설음이리라. 스무살짜리가 무슨 미련이 있어서, 정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고생은 사서 했는지 모르겠다고 넋두리처럼 말하시곤 했다. 새마을 운동으로 동네 구석구석 찌들어 있던 궁상맞음이 어느 정도 벗어지고 전기도 들어왔다. 몇 년 후에는 우리 집도 텔레비전을 사 연속극을 보러 더 이상 이집 저집 기웃거릴 필요가 없어서 말도 못하게 좋았다. 그 때는 전기가 부족했던지 아니면 송전 시설이 미비했던지 아무튼 툭하면 정전이 되곤 했는데 어느 날 타잔에 푹 빠져 여차하면 화면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두해 있던 차에 전기가 나갔다. 나와 동생이 텔레비전을 쾅쾅 치고 욕을 해대며 성질을 부리다 제풀에 지쳐 잠잠해 지자 어둠속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야 이 철딱서니 없는 놈들아! 니놈들은 잠깐 어둡다고, 맨날 하는 데레비 하루 못 본다고 그 난리를 치느냐? 니 아버지는 평생을 이렇게 살고 있다. 한번이라도 그런 아버지 생각을 봤느냐? 이런 천하에 못쓸 놈들 같으니...”하면서 아주 노여워하셨다.  중학생이 되도록 아버지가 얼마나 고. 그 건 사지는 멀쩡한데 갑자기 눈만 멀어버린 아버지와 한평생 살아야했던 당신에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설음이리라. 스무살짜리가 무슨 미련이 있어서, 정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고생은 사서 했는지 모르겠다고 넋두리처럼 말하시곤 했다. 그 일로인해 어렴풋이나마 아버지의 장애를 깨닫게 됐고 VTR의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 시간이 휘리릭 하고 지나 간 것처럼 몇 단계 뛰어넘어 성큼 철이 드는 계기가 됐다. 그 후로는 전기가 나가도 묵묵히 기다리며 되레 “아버지는 언제나 이렇게 어둡겠지.....” 하며 잠깐씩이나마 되뇌는 시간으로 삼고 있다. 해는 아침마다 뜬다지만 우리 아버지에게는 예외였다. 형들이 대학엘 갔다면 셋째인 나는 더 이상 욕심 부릴 형편이 아니었는데 행인지 불행인지 그 기회가 나에게 왔고 더군다나 돈이 많이 든다는 의대를 끝까지 고집했다. 부모님도 “우리 집에도 대학생이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 너만 믿는다. 돈 걱정은 마라”시며 큰 기대를 하셨다. 그 것은 안개처럼 집안에 드리워져 있는 어둠을 걷어 내야 한다는, 말은 안하지만 한식구라면 그냥 알 수 있는 바람이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그 바람을 정작 의사가 돼서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늦게 인턴 숙소로 올라와 연락을 드리니 부모님은 일이 힘들다는데 겨를이 있겠느냐 면서 오히려 나를 걱정하셨다. 하지만 목소리에 묻어있는 “가야지! 검사받으러 가야하고말고...” 하는 속내를 굳이 감추려하지 않으셨다. 아버지 눈 검사를 마친 교수님이 “시신경이 모두 죽었습니다. 현재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진단했다. 음성은 부드러웠지만 고칠 수 없다는 결론만은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높다란 성벽같았다. 나는 힘들 거야 하지만 혹시 알아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달랐다. 당신의 한쪽 눈을 빼서라도 반드시 고치겠다는 각오로 오셨던 것이다. 교수님은 “신경이 살아있다면 고칠 수 있는데..... 어머니의 눈으로도 안 됩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진료실을 나온 어머니는 풍선이 펑하고 터지듯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셨다. 진료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다들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전혀 개의치 안으셨다. 아버지 눈을 대신하여 소처럼 아니 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신 어머니, 정말 강철같이 단단한 분이라고 여기고 있던 어머니가 그렇게 크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괜찮아! 난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지금까지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산다고 이 야단이야”하면서 애써 어머니를 나무랐지만 음성이 가늘게 흔들리는 것 까지는 어찌할 수 없으셨나 보다. 나는 곁에 서서 “그래요, 아주 실컷 우세요. 아무리 크게 울더라도 오늘만은 무죄입니다”를 속으로 외치며 이제는 이루지 못할 꿈으로 남게 된 바람을 천천히 지워버렸다. 부모님을 태운 택시가 병원 문을 빠져나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제야 알싸한 가슴 저림이 뭉텅뭉텅 밀려왔다.

 의료기 전시회에 가기 하루 전 진료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아버지 말소리가 아침부터 갑자기 변하고 자꾸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하셨다. 평소에 당뇨가 있어 약을 들고 계셨던 터라 부작용이 생긴 것으로 짐작한 나는 겁이 더럭 나서 바로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전화는 끊었지만 이상 없을까? 별일 아니겠지! 혹시 잘못되면 어쩐다? 병원이 아직 자리도 제대로 못 잡았는데... 내일 친구들과 약속은? 미리 취소할까? 하는 온갖 생각이 환자를 진찰하거나 처치하는 도중에 문득문득 떠올랐다. 오후에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있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대뜸 오빠는 도대체 뭐하는거냐 아들이 의사라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어! 하며 당장 내려오라고 했다. 오전에 병원엘 갔더니 혈당은 정상이니 그냥 집에 가라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점점 더 정신을 놓는 것 같아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건가 하는 의심이 들어 일단 병원에 입원한 다음 바로 CT를 찍어 보자고 했다. 오후 진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CT를 찍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한다며 차라리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동생의 대답 뒤쪽으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이 밤중에 어딜 간다고 야단이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나는 그러면 지금 바로 가겠으니 아버지를 큰 병원으로 모시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어머니가 전화를 다시 하셔서 큰 병원에는 안 갈 것이며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할 테니 너는 내려오지 마라 하시며 그냥 뚝 끊어 버리셨다.

 내려가려다 그만 둔 탓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우두커니 앉아 하루를 되감기했다. 경황이 없는데도 황급하게 차를 몰고 내려올 것 같은 자식을 더 염려하시는 부모님!... 그런데 나는... 진정 아버지를 걱정한 것인가? 행여 병원 일을 더 걱정하고 친구들과 놀러 가기로 한 내일의 약속을 먼저 신경 썼던 것은 아닌가? 내려오지 말란다고 올 커니 하는 심산으로 냉큼 주저앉은 것이 자식으로서 의사로서 할 짓인가? 내가 한 일이라고는 동생에게 전화 한통 한 것 외에 나머지는 걱정하는 척하며 말로만 이래라 저래라 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원장님 원장님 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는데 내가 이러나! 하는 생각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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