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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미로 속에서 반딧불이를 만나다

  • 연도2008년
  • 수상대상
  • 이름권진태
  • 소속고령군 보건소 공중보건의

크노소스 궁전의 미로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내 손에도 테세우스의 실타래가 쥐어져 있길 바라지만 아쉽게도 내 손아귀엔 슬픈 흐느낌만이 나지막히 손금을 따라 맴돌고 있을 뿐이다.


“흉부외과 지원했어.”


“결국~ 너 정말…….”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외마디 날카로운 외침 뒤로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아내던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내 아내이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힘든 흉부외과 지원을 극구 반대했었다. 그런 아내 앞에 나는 어떤 위로나 설득 한마디 없이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그 어떤 말도 무의미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슨 말을 내뱉을 만큼 내 자존심도, 의지도 약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네가 가려는 길이 깜깜한 미로라는 걸 잊지마.”


한참을 울던 끝에 아내가 돌아서며 내뱉은 차가운 한 마디였다. 내가 가려는 길을 넓고 탄탄한 하이웨이쯤으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러나 정녕 내가 가고자하는 길이 죽음의 미노스가 기다리고 있는 고독의 공간‘미로’란 말인가! 내 선택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물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그 길로 이미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선택한 길이 ‘CS surgeon’이었다.

띠리리릿! 띠리리릿!
새벽 4시. 날카로운 기계음이 적막을 깼다. 중환자실에서 수술환자를 keep하며 잠깐 잠이 든 지 5분도 채 안된 시간이었다. 무뎌질 때도 되었지만 콜벨 소리는 내 신경의 수은주를 정수리 끝까지 밀어올렸다. 응급실이다. 오늘도 또 눈 붙이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매일의 일상이다. 6시간 이상의 수술, 어떨 땐 20시간의 수술을 감행해야 했고 날밤을 새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주어진 2-3시간의 잠도 20-30분씩 쪼개서 청해야 하기 일쑤였다. 지원자가 없는 의국. 24시간 내내 생사와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육체적?정신적 중압감에 그나마 있던 전공의도 짐을 싸서 나갔고 그런 상황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의 몫이 되었다. 온 몸에서 진동하던 퀴퀴한 냄새, 도저히 먹기 힘들었던 몇 시간씩이나 방치된 음식들. 그러나 그나마도 내 몸에 존재하는 감각이란 감각은 모두 마비된 듯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져갔다.
감염에 민감한 우리 과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과 팔을 거친 솔로 씻고 또 씻어야 했다. 그 즈음 내 손등과 팔 피부 전체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지면서 그 틈새마다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접촉성 피부염이었다. 솔로 씻고 수술장갑을 끼는 한 내 손과 팔은 절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매일같이 소독액을 묻힌 거친 솔로 갈라진 손과 팔 사이를 문지르고 또 문질렀으며, 어김없이 수술장갑을 끼고서 몇 시간의 수술을 감행했다. 덕분에 내 손과 팔은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그 고통은 수술 도중에 나와 주사를 맞고 다시 들어가야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환자들과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바깥 세상 구경도 못하고 갇혀 사는 신세가 어쩜 그리 똑같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나 긴급 콜을 받고 막상 죽어가는 그들 앞에 섰을 때는 정신이 아뜩하였고, 심폐소생술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방망이질하는 내 심장을 감당하기란 사뭇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망선고를 하고 돌아나와 눈물을 훔쳐야 했던 순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전공을 택한 것에 대한 나의 오만함을 실감했다. 여기선 생명만큼이나 죽음을 많이 경험한다는 걸. 그리고 선천적으로 죽음이라는 것에 담담해질 수 없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하루도 예외없이 환자들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나날들. 병원 밖 출입도 제한된 채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 병동을 24시간 내내 돌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문득 병원이 미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가 없는 미로.

그래서인지 나는 잠을 자면 꼭 미로 속을 헤매는 꿈을 꾸곤 했다. 깜빡 잠들었던 그 몇 분의 짧은 순간에서도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깜깜한 미로 속을 계속해서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어쩌면 아내의 마음을 외면한 채 철저히 자신만을 생각했던 내 선택에 대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아내가 던진 그 말은 쇠고랑이 되어 내 발목에 감겨버렸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덫과 같이 내 살갗을 찢고 파고들어 단말마의 아픔을 주었다. 그제서야 흉부외과를 택한 이후로 아내의 생일을 단 한번도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뿐이랴.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아이가 아팠을 때도,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도. 그 어느 중요한 순간에도 나는 내 가족들 곁을 지키지 못했다.

내 이상과 꿈을 펼치리라는 기대. 그리고 환자에 대한 열정으로 선택했던 길 한복판에서 나는 미아가 되어 울부짖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갔고 의국 전체를 통틀어 전공의라곤 오직 나만이 유일무이했던 3년차 시절. 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던 그날. 12월 31일.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왔다. 크리스마스도 함께 있지 못했기에 병원 앞 식당에서 잠시 저녁이라도 먹자 싶어 아내를 불렀다.

상태가 안 좋아진 환자가 생겨 처치를 하다보니 벌써 약속시간 보다 2시간이 흐른 후였다. 옷을 갈아입고 막 나서려던 참에 콜이 울렸다. 응급 수술이 생긴 것이다. 별수없이 로비로 내려갔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로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도 거의 못 보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 내 아이는 기다리다 지쳐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내 표정을 본 아내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 이미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일은 비단 한두번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못 나오지? 알겠으니까 어서 들어가.”

나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더 이상 미안하다는 소리도 할 수 없어 그냥 그 길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아내가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다리를 끌면서 고통스럽게 발을 내딛는 걸 보았다.

얼른 뛰어가 바지를 걷어보니 온 다리가 피에 젖어 있었다. 팔꿈치도 퉁퉁 붓고 피가 굳어 있었다. 알고 보니 칭얼대던 아이를 업고 오다가 자전거를 피하면서 빙판길에 그대로 넘어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목도리로 감겨진 턱도 부어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2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 생각하니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냥 가던지 왜 미련스럽게 이러고 있었어?”

나는 그만 버럭 소리부터 질러댔다.

“그냥 올라가!”

볼멘소리 끝에 결국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도 나를 찾는 콜은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고, 다른 선생님께 치료를 부탁하려고 했으나 끝내 고집을 피우며 아내는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떠난 택시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빨리 올라와!’소리치는 콜벨을 바닥에 있는 힘껏 내동댕이쳤다. 산산조각난 콜벨 신세처럼 내 마음도 갈갈이 찢겨나가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다 화가 났다. 아무것도 의미 없고, 왜 내가 여기 이러고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지금 왔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난 몰라. 내가 왜? 내가 왜?’

수술준비를 하면서 나는 환자 따윈 이미 안중에 없었다. 탈출하고 싶었다. 현재의 이 자리에서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끼고 있던 수술장갑과 수술모를 벗어 던졌다. 그 순간. ‘삑~~’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환자의 심장이 멎었다. 부정맥이 생기며 어레스트가 온 것이다. 총알이 관통하듯 머릿속에 불꽃이 번쩍거렸다. 급박하게 교수님이 뛰어오고, 흉골을 절개하고 마사지를 실시했다. 그리고 수술이 진행되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정녕 내가 환자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것이 환자에게 전달되어 심장이 멎은 것만 같았다. 자책감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수술 내내 ‘제발, 제발’을 외치며 환자의 심장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게 급박했던 수술이 마무리 되어 갈 때 쯤 암흑같던 수술실, 그 깜깜한 모니터 속에서 작은 반딧불이 한 마리가 서서히 날개 짓을 하며 조금씩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이다. 그 순간 오그라 붙었던 내 심장도 같이 뛰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환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월 1일 새해도 반나절이 지나간 후였다.

“선생님! 전 새해에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새 생명을 얻었으니까요.”

“저도 덕분에 새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는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정말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내 선택에 혼란스러워하며 방황했던 때. 처음 이 길을 선택했을 때 내가 가졌던 포부와 의지, 돈도 명예도 아닌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되살리겠다는 열정의 그 초심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었음을. 나는 소외된 길일지언정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선물할 수 있는 이 곳에 서게 된 것에 감사한다.

지금은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다. 병원의 소란스러움, 수술실에서의 급박함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공의 시절 다른 병동 보호자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내게 와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 선생님 호칭이 닥터그린이죠?”

아마 방송으로 닥터그린이 뜰 때 내가 막 뛰어가서 처치하는 걸 몇 번 본 모양이다. 피식 헛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내 손길로 죽어가는 환자가 되살아난다는 것에 나는 보람과 행복. 그 이상을 경험한다.

가끔 엠블런스가 지나가는 걸 보면서 그 속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얼마 전 ‘뉴하트’라는 메디컬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었다. 흉부외과를 다룬 드라마라 아내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내는 10시만 되면 꼭 TV앞에 앉아 있었다.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꼬박꼬박 드라마를 챙겨보았던 아내. 드라마를 보다 지나가는 소리로 문득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저 드라마같은 삶을 살겠지, 아니 그보다 더……”

어쩜 아내도 지금껏 내 선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 때문에 많이 희생한, 어쩜 내가 흉부외과 의사로 살아가는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여보, 그리고 엄지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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