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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하나님이 지켜준 아기

  • 연도2011년
  • 수상동상
  • 이름김정한
  • 소속한림의대 강남성심병원

미국 연수를 다녀온 후 진료를 다시 시작하던 2월 어느 날, 병원 현관에서 우연히 ‘그녀’의 어머니를 마주쳤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세요? 혹시 주연이가 어디 아픈가요?” “아녜요, 내가 허리가 좀 아파서… 애가 맨날 나한테 붙어 있을라고만 해서 허리가 너무 아파 정형외과에 들렀어요. 아주 오신 거예요? 저번에 인사하러 외래 들렀더니 미국 가셨다더만….” “예, 공부하러 갔다가 며칠 전에 들어왔어요. 주연이 잘 크나요?” “그럼요, 키는 좀 작지만 어찌나 잘 웃는지, 꼭 지 애미 어릴 때 같다니요.”


그러니까 벌써 4년이 흘렀다. 나는 그녀를 신경외과 병동에서 처음 만났다. 36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는 갑작스런 두통과 구토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뇌 단층촬영(CT)에서 전이성 종양이 발견되었고, 흉부 CT에서도 종양이 확인되어 종양내과 의사인 내게 협진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진단은 뇌전이를 동반한 폐암 4기였다. 작은 키에 왜소한 그녀는 한 손에 성경책을 든 채 엷은 미소로 나를 맞았다. 그녀는 먼저 뇌에 전이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이어 뇌방사선치료를 받았고, 이후 항암화학치료를 위해 나에게 다시 의뢰되었다. 항암제를 바꿔가며 네 차례의 항암주사를 맞았지만, 그녀의 폐에 자리잡은 암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한 항암제에 의한 부작용과 겉모습의 변화에도 별다른 내색을 않던 그녀가 그만 지쳤던지, 항암치료를 잠시 쉬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다른 항암제를 골라 3차 치료를 해볼 계획이었지만, 일단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벚꽃 향기 가득하던 어느 날, 그녀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다시 외래를 찾았다.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면서. 식욕을 회복하고 체중도 많이 늘었는데, 배가 좀 나와서 걱정이라고도 했다. 이제 아이들과 더 오랫동안 살고 싶다며, 다시 항암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항암제를 투여하기 전에 먼저 흉부 CT를 다시 촬영했다. 며칠 뒤, 그녀와 마주 앉아 CT 사진을 훑어보던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뱃속에 아기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색이 되어 지난 7개월을 재빨리 되짚었다. ‘분명 처음 내원했을 때 생리도 있었고, 임신반응검사도 음성이었는데…….’ 신경외과에 입원했을 당시의 의무기록에도 그렇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 그런 기록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아기는 그녀가 처음 병원을 찾기 바로 전에 수정되어 아직 자궁에 착상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임신반응검사가 음성으로 나온 것이었다. 엄마가 뇌수술과 방사선치료, 4차에 걸친 항암화학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아기는 뱃속에서 몰래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저기 허둥지둥 기록을 뒤지는 나를 지켜보던 그녀는, ‘아마 병이 많이 진행돼서 저러나 보다’하는 걱정스런 얼굴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돌려 CT 사진 속의 아기를 보여주자, 그녀도 사색이 되었다. 옆에 선 남편과 친정어머니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나는 이런 일이 생기게 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이 기막힌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어떻게….” 컴퓨터 화면 속 자신의 아기에게 고정된 그녀의 두 눈은 눈물로 글썽거렸다. “우선 산부인과에서 아기의 건강상태를 체크해봐야 합니다.” 이 무미건조한 말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틀 뒤로 산부인과를 예약한 다음, 일단 그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하지만 내내 자책과 후회가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그 동안 왜 생리에 대해서는 다시 물어보지 않았을까?’ ‘왜 복부 진찰을 게을리했을까?’ ‘구역질이 심하다고 했을 때 왜 항암제 때문이라고만 여겼을까?’ 그러나 막상 생리가 없어졌다고 했어도 독한 항암치료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환자의 병이 폐암이었기 때문에 관련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 한 매번 복부를 진찰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또 몇 차례 심한 구역질을 호소했지만 항암제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 하루 아침에 돌팔이 신세가 되어버린 나에게 위안이 될 수는 없었다. ‘제발 아기가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 나는 비록 종교는 없었지만, 수도 없이 기도했다.


검진결과, 아기는 다소 작았지만 다행히 건강한 상태였다. 하지만 남편과 어머니는 절대로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 “엄마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애는 낳아서 어떡한데요?” “그 동안 독한 항암제를 그렇게 맞았는데 아기가 건강하다고 어떻게 장담합니까?” 어머니와 남편으로서 임신 7개월이 되도록 까맣게 몰랐다는 자책과 환자가 임신을 했는데 어떻게 의사가 모를 수 있었냐는 원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낳을 거예요. 저는 이 아기 꼭 낳을 거예요.” “대체 어쩔라고 이러는지 몰라. 너도 빨리 치료 다시 시작해야지!”“제가 당장 죽는 한이 있어도 낳을 거예요. 아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예요. 제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기는 벌써 없어졌을 거예요. 암 때문에 아기가 지금껏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기를 지켜 주신 거라구요.”


그녀는 단호했다. 내가 더 보탤 말은 세상에 없었다. 사실은, 유산시키겠다고 해도 아기가 이미 많이 자란 터라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말을 언제,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어머니와 남편은 체념한 듯 한숨만 쉬었다. 그녀는 만삭까지 기다려 아기를 낳겠다고 고집했다. 아기를 위해서는 그러는 것이 좋겠지만, 그녀의 치료를 마냥 늦출 수도 없었다. 엄마가 오래 살아야 아기를 돌볼 수 있지 않겠냐고 겨우 설득하여 2주 뒤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참 많이도 착해졌다. 그 좋아하던 맥주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동안 환자들을 좀 더 신중하게 진찰하지 못한 점, 좀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 앞으로는 정말잘할 테니 이번만은 용서하시고, 당신께서 지금껏 지켜주신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했다. 아기만 건강하면 당신을 믿겠다는 뻔한 거짓말도 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그녀는 분만을 위해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내게 아기가 태어나는 걸 지켜봐 달라고 했다. 나는 마취과에 부탁하여 수술을 참관했다. 척추마취와 함께 수술이 진행되었고, 드디어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손가락, 발가락을 꼭 열 개씩 가진 예쁜 공주였다. 그녀는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수술에서 회복되자마자 새로운 항암제로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많은 항암제에도 전혀 꿈쩍 않던 암덩어리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다행히 부작용도 별로 없어서, 그녀는 아기를 계속 돌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잘 보살피라고 응답해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병원에 올 때마다 아기 소식을 가지고 왔다. “이름을 주연이라고 지었어요.” “주연이가 저를 꼭 닮았어요.” “주연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해요.”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마침내 주연이를 데리고 병원에 와서 내가 안아볼 수 있는 영광도 주었다.


하지만 종양은 다시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겨우내 초초한 마음으로 그녀의 시한부 행복을 지켜보았다. 다시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고, 그녀는 돌잔치를 했다며 떡과 주연이 이름을 새겨 넣은 수건을 가지고 왔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리고 이제는 주연이 곁을 떠나도 되겠다 싶었던지 그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인간의 마음이 참 간사해서였을까? 나는 제발 아기가 건강하게만 해달라며 애타게 찾았던 하나님을 그 ‘감사합니다’란 인사 한마디를 끝으로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작년 미국에 머물면서 아내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순전히 예배 후 먹는 잔치국수 때문에 일요일마다 못이기는 척 교회에 끌려 나간다. 난 아직도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저녁마다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쌍둥이 아들의 고사리 손을 보면서 4년 전 그 아기는 분명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거라고 믿는다. 오랜만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주연이의 돌잔치 수건을 꺼내보았다. 이번 주말에는 이렇게 기도해야겠다. ‘하나님, 앞으로도 주연이를 건강하게 지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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