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장미목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딸기의 사전적 정의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딸기의 정의는 그러하지 않다.

의사면허증을 따고 인턴이 되어 처음 돌게 된 과가 산부인과였다. 산부인과는 레지던트가 부족해 인턴이 외래에서 초진도 보고 병동주치의도 해야 했다. 아직 내가 과연 의사인지도 실감나지 않던 초보 인턴에게 첫 달 산부인과 근무는 녹록하지 않았다. 숨을 고르고 진료실 의자에 앉아 첫 환자를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앳된 외모의 환자, 왜 저렇게 어린아이가 산부인과에 왔을까 하는 궁금증도 잠시 자그마한 어깨 아래 만삭의 배가 그 소녀가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 16살의 만삭 소녀와 얼굴까지 빨개져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26살의 초보의사 사이에 ‘구세군’ 표식이 붙은 차트가 놓여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아이였다.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날라리도 그런 날라리가 없었다. TV에서나 보던 십대 미혼모가 내 눈앞에 그것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해맑은 모습으로 서있었으니, 괜스레 알지도 못하는 그 아이의 부모님이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원망스러웠다. 네가 지금 그렇게 천진난만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냉랭하게 예진을 마쳤다. ‘구세군’ 표식을 달고 온 아이, 그 아이는 구세군 미혼모 쉼터에서 온 아이였다. 구세군 쉼터에서 지내다 출산 후 일부 미혼모들은 직접 아기를 키우기도 하고 그 외 대부분은 입양을 보낸다고 한다. 이 경우 출산 직후 단 한번 아기를 안아볼 기회를 준다고 한다.

산과병동은 늘 면회객들로 북적였다. 얼굴에 ‘나 이제 아빠 되요’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남편과 손자가 생기는 것이 한없이 즐거운 부모님들로 시끌벅적했다. 그 가운데 보호자 하나 없이 산과병동에 만삭을 하고 누워있는 어린 소녀는 딱히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미 이마에 주홍 글씨를 새겨놓은 것과 같았다. 그 아이는 ‘병실 사회’속에서도 혼자였다. 늘 혼자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그 아이가 안쓰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재는 그래도 싸’라고 생각했다. 병동에 가도 그 아이와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친절하고 다정한 의사가 되는 것이 나의 모토였지만 그런 아이에게는 친절을 나누고 싶지 않았고 그런 식으로라도 벌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NST를 걸고 있었다. 그날따라 아기가 마구 돌아다니고 있는지 아기 심장을 잘 못 잡아서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면서 헤매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미우세요?”

난데없는 그 아이의 물음에 처음으로 그 아이의 눈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까맣고 맑은 눈이었다.

“선생님은 다른 환자들한테는 잘 잤느냐, 불편한 거 없느냐 물어보면서 저한테는 한 번도 안 물어보시고 한번도 안 웃어주시잖아요. 제가 미워요? 왜요? 제가 미혼모라서요?”

“…….”

“다들 내 입장은 들어보려 하지도 않아요. 그냥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위로해주거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인 것처럼 꾸짖고 혼내고 그 중에 젤 나쁜 건 선생님처럼 꾸짖지도 않으면서 벌레 보듯 경멸하는 사람이에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요. 아무도, 심지어 우리 엄마 아빠도.”

그 아이는 울지도 큰소리 치지도 않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커튼으로 사방이 막힌 1평 남짓한 공간이 나와 그 아이의 숨소리 그리고 NST기계를 통해 들리는 규칙적이고 우렁찬 아기의 심장소리로 채워졌다. 그 아이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 1평의 공간이 나의 숨을 옥죄어 왔다. 나는 왜 이 아이를 미워했던가? 나는 왜 이 아이에게 벌을 주려 했던가? 그 어떤 것에도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입장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행동들에 대해서 미안한 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뭉개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미혼모라서 미운 것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해맑아서 더 미웠다. 미혼모라면 적어도 죄인처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해맑게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울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순히 행실이 불량해서 미혼모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지 그 아이가 왜 미혼모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미혼모라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던 내가 벌을 줄 자격이 있는 건지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어느 누가 저 창녀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느냐? 죄 없는 사람만 던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출소자들이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아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선입견’, ‘색안경’평범하게 쓰이는 이 단어들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무서운 말들이었을까?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역시나 그 아이에게 눈을 맞추지도 말을 걸지도 못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나의 미숙함이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넌 나쁜 아이야’라는 생각 들어 혼란스러웠다. 나는 하루 세 번 묵묵히 NST를 걸었고 그 아이는 묵묵히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주말 저녁, 주말이라 더욱 많은 면회객들로 병실이 북적였다. 병실을 들어서자 딸기 향기가 방안 가득했다. 마침 출출한 시간이라 딸기 향기는 나의 식욕을 마구 자극했다. 매점에서 뭐라도 사먹어야지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문 앞에 있는 그 아이의 침대에 커튼이 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보호자들이 올 때마다 수군거리고 눈총을 받아도 늘 당당하게 누워있던 아이였는데 빛 한 점 들지 않게 커튼을 쳐놓았다. 자고 있나 커튼 사이로 확인만 하고 가려는데 그 아이가 나를 붙들었다. 그 아이는 울고 있었다.

“선생님, 저도 딸기가 먹고 싶어요.”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말이 담겨 있는지 나는 알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딸기 요플레를 먹는 소녀를 보았다. 딸기를 구할 수 없어 대신 매점에서 사온 딸기 요플레를 딸기보다 더 맛있게 먹어주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해맑은 표정으로 요플레를 먹는 모습이 순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거 먹고 싶은 건 없니?”

다음날 그 아이는 예쁜 아기를 낳았고 딱 한번 아기를 안아보고 떠나 보냈다. 10달 동안 짐이었던 아기가 없어지면 홀가분해 할 것 같았던 그 아이는 3일 밤낮을 울었다. 16살의 어린 엄마에게도 모성이라는 게 생겼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너를 핍박 받게 하고 눈총 받게 했던 원치 않던 아기에게 너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니? 네 엄마에게 버림받게 만들고 널 엄마로 만든 아기에게 어떤 마음을 주었니?’하지만 해맑은 표정이 사라진 그 아이의 얼굴에서 그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혼모 1만 명 시대. 모텔, 화장실에서 홀로 아기를 낳고 쓰레기봉지에 영아를 유기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또 화가 나고 벌을 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한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는 단지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