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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별일 없이 산다

  • 연도2015년
  • 수상은상
  • 이름최원석
  • 소속고양정신병원
  2015년 8월 7일 금요일 AM 10:30. 덥고 나른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회진을 돌기 위해 여자 폐쇄병동에 막 들어왔을 때, 갑작스럽게 한 환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내게 달려들어 왼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일순간 8년 전의 트라우마가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때는 2007년 3월, 내가 정신과 레지던트로 들어온 지 2주 정도 남짓 했을 때로 기억한다. 다른 전공의들과 달리 나는 인지던트 수련 기간(인지던트 : 인턴과 레지던트의 합성어로, 일반적으로 인턴 마지막달에는 일종의 레지던트 준비기간처럼 전공의로서 진료기술 및 환자 보는 법 등을 배우는 수련기간이 과별로 있는 것이 관례였다)이 없이 막바로 전공의를 시작하게 되어 아직은 정신과에 대해 모르는 것도 너무나 많았고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모든 일에서 back duty 선생님의 오더를 일일이 받아가며 의사 결정 및 처리를 해야 했던 시기였다. 당시 윗년차 선생님의 입원 환자로 양극성 장애와 경계선 인격장애가 혼재된 43세 여자환자가 폐쇄병동으로 첫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초조, 감정기복이 심한 상태였다. 환자는 저녁식사 후 딸이 물품을 전달해주러 병동에 들어온 것을 보고 딸을 만나고 싶다고 간청을 하였으나 윗년차 선생님께서는 환자가 가족을 보는 것이 불안, 초조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이를 허용하지 않으셨고 당직의사였던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병동 스테이션 앞에서 환자에게 설명을 하던 차였다.

  “그래? 너 이 ××, 한 번 죽어봐라!”

  나는 일순간에 환자에게 멱살과 머리 끄댕이를 붙잡혔고, 당시 삼각형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던 병동의 한 가운데가 스테이션인 터라 병동 내의 모든 입원환자들이 그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당직 보호사와 함께 그녀를 이끌고 안정실로 들어가야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그녀를 끌고 가는지, 아니면 그녀에게 끌려가는지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어이없는 광경이었고 내 머릿속은 일시적으로 완전히 새하얘졌다.

  “선생님, 이 환자 restraint(강박 : 공격적 행동을 보여 자,타해 위험성이 있을 경우 사지를 강박하는 행위)할까요?” 하는 보호사의 물음에 

  “잠시만요, 일단 isolation(격리 : 사지 강박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정실에서 환자를 관찰하는 행위) 해주시고 제가 바로 와서 다시 말씀 드릴께요”라며 초보 의사티를 팍팍 내야만 했던 나였다. 

  당직실에 뛰어가서 윗년차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렸는데, 대뜸 윗년차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야, 너 그환자 restraint도 안하고 뭐했냐?”여서 다시 병동으로 뛰어가서 

  “환자 restraint해주시고요. ativan,peridol도 injection할게요” 하고 이야기를 했다. 

  잔뜩 거지꼴이 되어 있는 나를 환자들이 계속 쳐다보고 있어 당혹스러웠다. 환자는 강박을 당하면서도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기서 나가면 너 의사노릇 못하게 해줄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계속 했고 나는 오더에 따라 그녀에게 주사를 주고 sedation시켰다.

  문제는 그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결국 병원의 대처를 문제로 삼으며 자의퇴원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 보호자에게 자신이 병원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무렵 정신병원 내 폭력 때문에 언론에서 보도가 잦았고 그녀의 보호자가 언론사 쪽에 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졸지에 피해자이면서도 그녀 앞에 사과를 해야 했던… 너무나도 기가막힌 상황에 빠져야만 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 어느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질 않았다. 윗년차 선생님들 앞에서는 

  “니가 오죽이나 못났으면 환자한테 맞고 다니냐”는 자조섞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고, 병동에서는 

  “선생님, 법적으로 가더라도 걱정 마세요. 저희가 선생님 머리카락 한웅큼 빠진 거 증거물로 다 갖고 있어요” 하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 상황에서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환자에게 맞았다는 사실보다도, 그들 앞에 머리를 조아려 나의 무능함을 시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이대로 굴복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이래갖고 정신과 의사를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이것도 내가 이겨내야 하는 시련인 건가?’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찾아오는 마음의 번뇌를 잠재우지 못했고, 며칠밤을 잠을 못자고 하얗게 지새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아니 시간이 며칠 뒤로 훌쩍 넘어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엔 ‘그래.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사과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주자. 나는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나보다. 멋있게 정신과 의사를 그만두고 의국을 나가자’라고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며 교수님과 선배님들께 편지도 작성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어떻게 내가 교수님 진료실로 내려갔는지 진료실에서는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정확히 나질 않는다. 아마도 내 무의식 속에서 그날의 기억은 지우고 싶어 의식의 심연 아래로 억압시킨 모양이다. 다만 보호자라던 남편 역시 환자 못지않게 기고만장했었고 ‘의사노릇 똑바로 하라’는 식의 거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오늘로서 나는 정신과 그만둘 거야, 다시는 너희들 앞에 머리 숙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담당 교수님은 환자와 보호자가 나가자마자 나지막히 “에잇 나쁜 ×” 하고 욕을 하셨다. 나는 요즘 말로 ‘사이다’처럼 속이 시원해졌고, 뜻하지 않게 큰 위로를 받았다. 숙소에 들어와 다 싸놓았던 짐을 풀고 교수님들과 선배들에게 썼던 편지도 찢어버렸다. 레지던트를 포기하겠다는 혼자만의 결심을 바꾸었고, 정신과 전문의가 될 때까지 무사히 수련을 마쳤다. 하지만 이 일은 내 기억 속에 감추어둔, 잊고 싶은, 어쩌면 극복하고 싶기도 했던 그런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너무도 갑작스럽게, 생각지도 못했던 트라우마가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마치 평행이론처럼… 생각하면 할수록 8년전 그 때와 너무도 유사했다. 가해자의 나이도 그 때와 같았고… 병동의 수많은 환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왼 뺨을 세게 얻어 맞았다는 것이 나는 너무도 자존심이 상했다. 두 번째 공격엔 그녀의 손을 붙잡았고 보호사 아저씨가 그녀를 보호실로 데려갔다. 나는 그녀에게 ativan, peridol를 주사해 달라고 오더를 내렸다.

  ‘어쩜 8년이 지났는데도 넌 하나도 달라진 게 없냐? 이런 못난 놈.’

  내 마음의 소리가 나를 채찍질하였다. 나는 그녀의 정신과 투약을 증량한 뒤에 평정심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선생님,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 하는 다른 환자들의 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다. 

  나는 회진 계획을 취소하고 조용히 진료실로 내려갔다. 진료실로 내려가면서도 ‘환자 폭력으로 112에 신고를 해야하나?’, ‘앞으로 나는 이 환자를 어떻게 봐야 하지? 지금 같아서는 이 환자를 도저히 볼 자신이 없는데…’,

  ‘환자를 병원에서 쫓아내버릴까? 아님 내가 여기를 그만두어야 하나?’ 머릿속에는 별의별 생각들이 가득했고, 주말 동안 나의 마음은 또 번뇌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주말이 지나고 병동 회진을 도는데 그녀가 “약이 늘어서 몸이 너무 힘들어요”라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와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당분간은 그대로 약을 드셔야 됩니다. 지금은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네요”라며 서둘러 그녀의 말을 자르고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오면서도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를 용서해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환자들에게는 기계적으로 ‘용서하라, 이해하라’고 이야기 했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예전 트라우마 때문에 마냥 이 상황을 피하고만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 역시 증량된 약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게 우울하고 무기력해 보였고,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진 채 눈에 띄게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녀가 노트에 편지를 써서 내게 가져왔다.

  “선생님, 죄송했어요. 그 때는 제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저도 제 안에 괴물같은 제가 있다는 게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나름의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녀에 대한 나의 분노와 미움, 그리고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8년 전에는 내가 사과를 해야 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사과를 받았으니… 그만하면 됐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녀에게 화해를 청했다.

  “저는 ??씨가 아파서 그랬다고 이해할게요. 약은 증상이 조절될 때까지는 당분간 그대로 써야 할 것 같아요. ??씨가 병동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어조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 표정이 한결 밝아져서 병실로 돌아갔다.

  아직도 그녀의 증상이 다 낫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일찍 사과를 받아준 게 아닌가 싶게 그녀는 간헐적으로 치료진에게 공격적인 부분을 보여, 컨디션을 살펴가며 투약을 조절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나는 매일 찡찡거리는 그녀의 말을 받아주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사과를 받아준 이후로 내 마음도 동시에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그녀의 진심어린 고백이 나의 오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도와주는 게 아닐까를 생각하며 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의 가사를 떠올린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나는 매일을 정신병원에서 환자들과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살고 있지만, 만일 누가 내게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별일 없이 산다. 아니, 살고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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