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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7%의 기적

  • 연도2016년
  • 수상동상
  • 이름강진웅
  • 소속중랑제일의원
7%…. 아내가 중환자실에서 생명 보조장치에 의존하여 지낸 지 11일째 되는 날 담당 주치의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심폐소생술로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 환자가 완전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의식을 되찾을 확률은 하루에 대략 8%씩 떨어진다고 한다. 만약 의식이 돌아온다면 초반 2~3일이 지나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며, 11일째까지 본인 힘으로 숨을 쉬지 못하면 대개의 경우 의식을 잃게 만들었던 그 원인 질환에 의해서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감염, 저산소증 등 생명 보조장치의 합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의식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올 확률은 단지 7%.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미국 유학시절인 2014년 워싱턴 DC에서였다. 그녀는 한국으로 따지자면 강원도 두메산골 정도에 해당되는 아이오와주 조그만 도시에서 태어나서 대학 진학 직전까지 그곳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백인 여자들 특유의 독립성이나 자기주장이 굉장히 적었고,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동물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평소 독서를 나만큼이나 좋아했으며 나를 만나기 전에 취미 삼아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자그마치 책 두 권 분량이나 될 정도로 글재주도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평생 자라온 나보다 훨씬 순수한 그녀가 첫 데이트 때 나에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내 직업도 아니고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도 아니고 어떤 차를 모는지도 아니었으며 다름아닌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책 제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첫 만남에 이렇게 특이하고 좋은 인상을 준 여자는 지금의 내 아내가 처음이었다. 난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이라고 대답했다.
고향인 아이오와주를 떠나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로 혼자 이사 온 지는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는 아내. 그 동안 부모님은 단 한번도 아내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대학도 중간에 그만둔 아내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인지 아내는 부모님들하고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내왔다. 어렸을 때는 똑똑하고 전혀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자라다가 대학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시작한 아내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부터는 약을 먹지 않고는 잠도 거의 못 자곤 했다. 그래서 술을 항상 마시고 자는 아내가 무척이나 불쌍해 보여서 내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차마 술을 자제하라고 강력하게 말을 못했다.

바닥에 앉아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꼼짝하지 않는 아내를 발견한 건 결혼한 지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마치 중풍이 오고 있는 듯 입은 움직이려고 온갖 힘을 쓰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내의 눈동자는 마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내 눈에 고정되어 있은 채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하고 있었다. 911에 신고하여 응급실에 도착한 후 시행한 모든 뇌 CT 및 MRI는 정상이었다. 응급실에 있을 당시만 해도 혈압과 호흡 및 체온은 모두 정상이었다. 다만 눈을 감고 뜨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손발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혈액 검사에서 다량의 알코올과 우울증 약이 발견되었고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내 아내를 이런 상태로 만든 것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3일 후, 폐색전증으로 아내의 심장은 16분간 멈췄다. 응급 소생술 이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생명 보조장치에 의존한 채 의식이 전혀 없이 자신의 가족들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딱히 친한 친구도 없는 아내는, 역시나 고향에서 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나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11일째 되던 날, 아내 주치의 및 교수진들은 나에게 DNR(응급소생술거부 동의서)을 권고했다. 병원의 윤리팀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 보조장치를 뗄 것을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대략 12년 정도 전, 내가 주치의로 보라매병원에 파견시절 수없이 받아야 했던 DNR. 막상 내가 환자의 보호자 입장이 되어보니 난 그저 슬픔과 절망에 괴로워하는 한 남자일 뿐이었다. 93%의 확률로 내 아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죽기 전까지는 현대 의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십시오”라고 의사들에게 말했다.
바로 그날 아내의 의료보험을 변경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보유했던 보험으로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의식이 없는 환자를 돌보아주는 장기 생명유지 장치 요양병원(한국에는 없는)으로 옮기기 위해서였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미국 병원 원칙상 기도 삽관 후 14일이 지나면 목에 작은 구멍을 뚫어 인공호흡기 튜브를 목 쪽으로 바꾸는 시술을 꼭 하게 되어 있다. 호흡기계 합병증을 막기 위함이다. 다음날인 12일째 되는 날에 기관 삽관을 위한 시술이 결정되었다. 앞으로는 다시는 아내의 목소리를 못 들을 것만 같았다. 이 시술을 하여도 나중에 혹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면 말을 전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난 소리 죽여 울어야 했다.
아내가 눈을 뜬 건 수술 예정일인 12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전날 나에게 DNR을 권유하고, 생명 보조장치를 떼자고까지 했던 의료진들은 나에게 사과까지 했다.
만약 내가 그 사람들의 의견대로 11일째 되던 날 산소 호흡기를 제거했다면 단 하루를 더 기다리지 않아서 아내는 지금쯤 하늘 나라에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의사인 나로서도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7%가 0%는 아니지만, 말기 폐암환자의 2년 생존율이 7% 정도이며 대부분이 2년 내에 사망한다. 하지만 내 아내는 같은 7%의 확률로 깊은 코마상태에서 11일 지난 후 12일째 되는 날에 기적처럼 스스로 숨을 쉬고 모든 생명 보조장치를 뗄 수 있었으며 몇 달간의 재활 치료를 마친 후 지금은 나보다 술과 담배를 더 잘 할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단지 중환자실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전혀 기억을 못할 뿐. 아내는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술에 취해서 집에서 잠이 들고 깨어보니 여전히 집이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내는 입원하기 전 입버릇처럼 사후세계를 동경하는 말을 하곤 했다. 아무 걱정 없이 영혼이 되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며 영원히 죽음이 없는 그런 상태가 꼭 두렵지만은 않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아내는 죽음을 아주 두려워한다. 만으로 11일 동안 그녀는 의식이 없었고, 16분 동안은 아예 심장이 멈췄지만 그녀는 아무 기억도, 꿈조차 꾼 기억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죽음에 아주 가까이까지 갔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후에도 그 어떠한 미지의 것이 있으며 그것을 느꼈다고 하곤 하는데 아내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텅 빈 상태로 의식 불명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말인즉슨, 만약 죽음 자체가 의식의 끝이며 그러한 무의식이 백만 년, 천만 년, 아니 무한히 끝나지 않는 단순한 의식의 부재가 죽음이면 어쩌냐는 거다. 천국도, 지옥도, 영혼도 없이 꿈도 꾸지 않는 무한히 지속되는 잠이, 또는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그냥 ‘무’가 끝도 없이 지속되는 상태가 죽음이라면 너무 끔찍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내의 말처럼,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일 수도 있으며 그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이 존재할 수도 있다. 아내의 경험에 의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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