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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방문객

  • 연도2017년
  • 수상동상
  • 이름성혜윤
  • 소속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지방의 중소도시의 국립병원이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대도시의 대학병원이나 개인 의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이 온다. 환자가 외래에 접수가 되고 나면 외래 진료실의 컴퓨터의 전자 차트에 환자의 목록이 뜬다. 환자의 이름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환자 정보를 담고 있는 창이 열리고 가장 왼쪽 환자 정보란에 환자의 이름과 나이 다음으로 나오는 정보가 보험유형이다. 건강보험이라면 환자나 보호자가 어느 정도 소득이 있는 것이고, 의료급여라면 소득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이다. 
 다른 병원보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의료급여 환자가 많은 편이다. 대학 병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국립병원이 아니라면 갈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정신과 환자들은 병이 재발을 거듭할 경우 입원을 반복하면서 직업 유지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고, 수입이 불충분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환자의 보험유형이 건강보험에서 의료급여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다른 병원에 다니던 환자가 경제적 상태가 어려워지며 국립병원으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전공의를 시작할 때 건강보험 상태였던 환자가 3년차가 된 지금 의료급여로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환자는 죄인처럼 보호자 옆에 앉아 있고, 보호자는 환자에 대한 애증과 버거운 현실로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환자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한 책임으로 무거워진다. 내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더 잘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 환자가 보호자에게 가지는 마음이 아마도 이 순간 내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종종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외래 진료를 보고 있는데 보험유형을 보고 멈칫했다. 일반? 처음 보는 단어인데 이게 뭐지? 외국인인가? 교포인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함께 들어오는데 비슷한 키에 마른 체형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자매라고 하기에는 얼굴이 전혀 다르다. 둘 사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시누이와 올케? 친구? 

 “어떻게 오셨나요?”
 “아, 저는 센터에서 나왔고요. 이 분은 북한이탈주민이세요. 요즘 들어 계속 불안하고 잠도 잘 못 주무신다고 하세요.”

 북한에서 왔다고? 탈북자?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인을 본 사람처럼 긴장을 하게 되었다. 내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란 초등학교 때 열심히 북한 글짓기 대회를 위해 읽은 책의 내용과 중학교 때 최초로 남북정상회담 사진이 실렸던 신문의 기사가 거의 전부이다. 케이블 오락 프로에서 접하게 되는 어딘가 어설프고 안쓰러워 보이는 모습들, 혹은 영화에서 보는 잔인하면서도 맹목적인 간첩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북한이라는 곳이 우리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연결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분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이해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겨 휴전선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아졌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찬찬히 보니 작고 마른 체구에 갸름한 얼굴이 참 곱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보는 큰 눈에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불안의 그늘이 넘칠 것처럼 가득하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이 여성과 비슷한 나이대의 탈북 여성 2명의 외래 진료가 시작되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1년이 넘도록 환자들은 늘 둘, 셋 씩 같이 왔다. 같이 오기 위해서 일부러 다음 번 외래 예약 날짜를 조정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시기에 하나원에 있었던, 이른바 하나원 동기들이다. 

 환자를 보다 보면 처음 보는 환자라도 예전에 봤던 환자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이 같고 나이가 비슷하며 경제적 수준에 차이가 없다면 살아온 궤적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많기 마련이다. 정신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은 젊은 의사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있다. 특히 나이가 지긋이 든 환자일수록 자신의 삶의 굴곡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어린(?) 의사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예전에 봤던 비슷한 환자를 진료했던 경험이 환자와 치료 동맹을 쌓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3명의 여성에 대해서는 백지와도 같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집안 분위기는 어땠을지, 학창시절에는 어떤 꿈을 꾸는 아이였는지,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을 할 때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아이를 낳고 키울 때는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아직도 그녀들의 꿈에 종종 나온다는 북한과 연결 짓는 순간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흐릿한 액정을 열심히 닦아내듯이 나는 궁금한 부분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묻고 또 물었다. 

 “선생님, 여기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게 매일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했거든요. 북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여기 왔는지. 오늘 물었는데 똑같은 걸 그 다음날 또 물어요. 똑같이 질문해서 똑같이 답하면 그 다음날 또 물어요. 한 달을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지금 선생님이 자꾸자꾸 물어보시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너무 힘들어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환자는 함구해버렸다. 나는 순간 움찔했다. 처음 북한 사람을 보다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던 내 마음이 죄스러웠다.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탈북을 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사람은 상상도 못할 고통의 연속이다. 평생 한 번도 겪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몇 년에 걸쳐 수도 없이 겪은 그들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내리는 것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도 가능할 정도로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도 그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고, 약간 호전되는 것 같으면 곧바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는 과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탈북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북송되었다가 재탈북한 여성은 아직도 잡혀가는 꿈을 꾼다며 수용소 이야기를 하다가 바들바들 떨었다. 다른 여성은 탈북 과정에서 중국에 두고 온 아이가 보고 싶다며 진료실에서 1시간 동안 울었다.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우리 같은 일반인이 전쟁에 대해 가지는 공포도 커졌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만약 전쟁이 나서 북한이 이기게 된다면 나는 1순위로 총살당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괴롭다는 환자 앞에서 나는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고, 약을 늘리기만 하는 것도 일시적인 증상 조절만 할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trauma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 이나 최면을 시도해보기 위해 병원 진료가 없는 주말에 관련 학회에 나가 배우기 시작했다. 한때는 이런 치료들이 사실을 왜곡시켜 거짓 기억을 환자에게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진짜 치료라면 현실을 직시하고 맞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고작 내가 살아온 인생에 빗대어서 판단하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극복이 가능할 정도의 외상이라면 내 앞에 환자로 앉아있을 일도 없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지고 싶지만 그게 안 되어 가장 답답한 것은 환자 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약이든 면담이든 다른 어떤 것이 되었든 환자의 괴로움과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도.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외래에서 종종 환자나 보호자와 실랑이를 할 때가 있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다니는 직장이나 학교에 병원에 간다는 말도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약을 중단하고 싶다는 환자나 보호자가 있다. 여기서 복약을 중단하면 다시 재발할지도 모른다며 나는 말린다. 환자의 증상이 병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부족이라고 비난하는 보호자도 있다. 상의 없이 약을 임의로 먹지 않거나 성분이 뭔지도 모르는 환약을 먹었다는 탈북자 출신의 환자도 있다. 얘기를 해도 해도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고집하는 이들을 볼 때면 아무리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순식간에 내 표정도 목소리도 딱딱하게 나올 때가 있다. 이 때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앞에서 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고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하다고 할 때이다. 그때마다 아차하게 되는 것은 내 쪽이다. 가능하면 몇 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내 핸드폰에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 전문을 저장해 놓고 수시로 보는 버릇이 생겼다. 환자나 보호자를 면담하면서 진이 빠질 때마다 나는 그 시를 떠올린다. 그리고 힘을 낸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북한으로 잡혀가는 꿈을 꾼다며 바들바들 떠는 환자를 보고 놀라고 당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입원한 환자라면 병동의 처치실로 안내하여 안정제를 주사했을 텐데. 잠시 기다렸다가 환자의 아들로 말을 돌렸다. 아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남한에 온 게 잘한 것 같다며 환자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어서 나를 안심하게 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환자는 힘든 과거를 뚫고 여기로 왔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제법 공부를 잘 한다는 큰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녀가 꿈꾸는 미래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수없이 부서지면서도 여기까지 왔고, 면담실에서조차도 반복해서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가늠하기도 어려운, 온 무게로 짊어지고 있는 그녀의 일생의 가장자리라도 내가 더듬어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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