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사랑과 신뢰의 힘
- 연도2017년
- 수상은상
- 이름홍영선
- 소속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11월 말. 첫 눈은 진작 내렸고, 길 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떨어뜨릴 나뭇잎이 남아있지 않은 가로수는 엉거주춤 서있고, 성급한 레코드 가게 주인이 틀어 놓은 설익은 크리스마스 캐롤은 이 세상 것이 아닌 양,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내과 레지던트 1년차 11월 마지막 토요일. 순환근무 계획에 따라 S병원 종양내과로 옮긴 첫날이었다. 30명이 넘는 암 환자의 병실주치의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레지던트를 시작하는 3월에는 환자가 무서워 벌벌 떨다가, 병실 주치의로 1년 가까이 지내고나면 어떤 환자를 만나도 다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도 암환자를 보는 것은 두려웠다. 그 분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직실 전화가 울렸다. 병동 간호사의 다급한 말소리.
“선생님, 악성 림프종으로 입원한 16세 남자 환자예요. 빨리 와 보셔야 겠어요”
주사바늘 자국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배가 팽창하면서 숨까지 차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숙소를 나서는 다리가 무거웠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병실을 향해 가는 내내 목덜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민호는 중3이었다. 숨이 차다고 했다. 목과 겨드랑이, 또 사타구니에 탁구공 크기의 덩어리가 만져졌고 얼굴도 퉁퉁 부어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마치 잉크가 번진 것처럼 멍이 들어 있었다. 주사바늘을 찌른 자리에서 피가 계속 나와, 거즈 뭉치로 누르고 있었다. 배도 팽창해진 것이 복수가 찬 것 같았다.
주말 내내 입원 환자 파악을 하는 사이사이, 틈만 나면 민호에게 갔다. 민호 아버지와 교대로 출혈 부위를 눌렀다. 지금처럼 다양한 혈액제제나 혈액 응고인자 같은 것을 사용할 수 없었던 1980년대 초. 그것이 내가 의사로서 그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음날까지 출혈은 계속되었다.
월요일 아침 회진 시간. 아직 창밖에는 어둠이 다 걷히기 전이었다. 종양내과 L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당시 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미국 종양 전문의였다. 회진 분위기는 엄숙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마치 성직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진 중에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환자들이 편안해 했다. 그 때 처음 만났지만 나도 교수님 같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지시를 했는데 마치 신이 내리는 신탁 같아서 단 한마디도 어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민호의 골수 검사를 했다. 치료방침을 결정하려면 꼭 해야 하는 검사였다. 팔에서 나던 피가 아직 멈추지도 않았는데 엉덩이에 큰 구멍을 또 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또 출혈 부위를 눌렀지만 원망스럽게도 출혈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민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참아 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생님, 저 나을 수 있어요?”
아버지가 곁에 없을 때 민호가 머뭇거리며 내게 던진 유일한 질문이었다.
레지던트 1년차는 응급실 환자를 돌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입원환자를 지켜야 한다. L 교수님은 외래에서 환자를 입원시킬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병실에 가시면 홍 선생님이 있는데, 제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동료입니다. 잘 돌봐드릴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환자들에게 레지던트 1년차를 이렇게 소개하는 교수님은 드물다. 환자들은 병실에 입원하면 제일 먼저 ‘홍 교수님’이 어디 계신가하고 찾았다. 그 덕에 나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는 처음부터 높은 편이었다. 또 나는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틈만 나면 병실을 순회했다. 그래서 환자와 대화를 많이 했고 가족같이 친해지기도 했다. 또 환자의 최근 상태와 문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려고 했다.
악성 림프종이 의심되지만 확진이 되기 전에 항암제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민호 아버지는, 병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치료를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항암 치료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효과를 보기 전에 민호 상태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이왕 큰 병원에 왔으니 항암치료를 한 번만이라도 해 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민호 아버지와 나는 금방 형제같이 친해졌다. 온화하고 침착한 분이었다.
내가 의사로서 능력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 것이 그 때가 처음인 것 같다. 항암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항암제 치료를 하면 부작용 때문에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앞에는 호랑이요 뒤에는 사자인 셈이었다. 그렇지만 악성 림프종이 맞는다면, 항암제에 잘 듣는 암이어서 부작용만 잘 견디면 완치의 가능성은 높은 편이었다. 내 가족이라도 항암 치료를 권했을 것이다.
그런데 민호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다. 치료도 못해보고 민호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모두들 애태우며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드디어 고대하던 결과가 나왔다. 악성 림프종이었다. 아침 회진 시간에 교수님께 보고했다. 잠시 생각하시더니 CHOP 항암 치료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항암제 투여 지시라고 생각했다
아침 회진이 끝나자마자 모든 일을 제쳐두고 민호의 처방부터 했다. 같이 걱정하던 간호사들이 병실 약국에 부탁해서 일찍 항암제를 받아왔다. 서둘러 주사를 시작했다. 민호 아버지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도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치료 결과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의사는 환자를 돌볼 뿐이고, 병은 신께서 치료하는 것입니다”
예과 시절 의사학 교실 주임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13. 점심시간. 병동에서 다른 환자와 면담을 하고 있는데 L 교수님이 올라오셨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교수님은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홍 선생, 민호 항암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에... CHOP에서 싸이톡산, 아드리아마이신은 3분의 1만 먼저 주고, 프레드니손과 빈크리스틴은 다 주세요. 그리고...”
“네? 민호 항암제 벌써 다 들어갔는데요...풀 도스로요”
내가 황급히 교수님의 말을 가로막았다.
“뭐? 벌써 줬어? 그것도 풀 도스로? 아이구!”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이 멎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교수님의 말씀은 그날 3분의 1만 먼저 주고 부작용이 나타나는 정도를 봐서 더 투여 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전에 없던 투약 방법이었다. 교수님은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이 병동을 떠나셨다. 그날따라 창밖에는 을씨년스러운 겨울비가 내렸고, 병동 구석구석에는 교수님의 굳은 표정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의사는 중세 도제제도의 전통이 아직도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직업중의 하나입니다. 도제제도에서는 장인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도제는 그 결정에 절대 복종해야 했습니다”
예과 시절 의사학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커다란 해머처럼 내 정수리로 떨어졌다.
L 교수님도 민호가 항암제를 견딜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고심을 하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항암제의 양을 줄이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그 대신 치료효과도 줄어들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환자의 몸 상태가 너무 나쁘면 항암제 투여를 하지 않고 몸 상태가 충분히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교수님은 민호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 얼마나 견딜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의사는 평생을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살아야 합니다.”라는 의사학 교수님의 말씀처럼 항암제를 처방하기 전에 교수님 지시를 다시 한 번 확인했어야 했다. 정말 그랬어야 했다. 나의 성급한 결정에 대해서 아무도 책망하지 않았지만 민호가 잘못 되면 내가 어떻게든 도의적 책임이라도 져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의사의 길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순간 두 돌을 갓 넘긴 큰 딸과 아내의 얼굴이 불안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민호 아버지에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그것이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 해준 그 분에 대해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민호 아버지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항암치료를 해 본 것만으로도 소원을 풀었노라고 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 날 저녁에는 차마 민호의 병실에 가 볼 수가 없었다. 전화 벨소리만 울리면 깜짝 깜짝 놀랐다. 다행히 병실에서 호출은 없었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병실 순회 시간. 민호의 병실 앞에서 멈췄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후에야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민호 상태가 과연 어떨지 궁금했지만 선뜻 그쪽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옆의 환자부터 살폈다.
다음 민호 차례. 시선을 돌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 예상과는 달리 얼굴이 부은 민호는 온 데 간 데 없고 잘 생긴 학생 한 명이 침대에 앉아서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숨 차는 증상이 없어졌고 양쪽 목에 보이던 덩어리는 눈에 띌 정도로 줄어있었다. 얼굴도 부기가 빠져 작아 보였다. 출혈도 멈췄고 팽창했던 배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식사도 조금 했고 오랜 만에 잠도 잘 잤노라고 했다. 악성 림프종이 항암제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민호 아버지는 옆에 서서 ‘그것 보세요. 내가 뭐라고 했어요?‘라는 듯 웃고 있었다. 온갖 나쁜 상상을 했던 나는 일시에 팔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하루 밤 사이에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
민호는 다행히 항암제 부작용도 잘 이겨냈다. 예정된 6차의 항암 치료를 끝낸 뒤 촬영한 CT 사진에는 민호의 악성 림프종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민호는 무사히 학교로 돌아갔다.
환자의 경과에 대한 의사의 예측이 틀리는 경우는 종종 있다. 무릇, 병의 치료는 약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리라. 민호는 다행히 항암제의 부작용을 무사히 극복하고 좋은 치료 결과를 얻었다. 그것은 햇병아리 의사인 나와 의료진에 대한 굳은 신뢰와, 민호를 진심으로 걱정했던 모든 의료진의 사랑의 결과였다고 굳게 믿고 싶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사랑과 신뢰. 나는 지금도 그 불가사의한 힘을 믿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