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
- 연도2019년
- 수상동상
- 이름정찬경
- 소속부평밝은눈안과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분주한 아침이었다. 아들의 등교시간이 빠듯해지자 엄마의 얼굴이 편치 않아 보였다.
“준석아! 이러다 지각하겠다. 좀 빨리 움직여라.”
나 역시 아들을 채근했다.
“아무래도 태워다줘야겠어. 여보.”
아내가 말했다.
“음, 그러지 뭐.”
학교 앞에서 아들을 내려주고 막 차를 돌리는데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커다란 차에 부딪혀 한 학생이 맥없이 고꾸라지는 게 보이는데 그 학생이 바로 우리 아들이었던 것이다. 설마 하고 내 눈을 의심하면서도 “안 돼!” 하고 괴성을 지르며 차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뛰쳐나왔다. 아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참담한 것이다.
“하나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너무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와주세요. 우리 준석이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울먹이며 이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내도 혼이 나간 사람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준석아! 준석아! 일어나, 일어나.”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자극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괴로움과 충격으로 넋이 나가 울며 소리치다가 구급차에 아들을 싣고 근처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구급차에 싣기 전 구조대원들이 아이가 입고 있던 옷과 메고 있던 가방을 전부 잘라내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평소에 구급차를 자주 보았고 그 속에도 있어봤지만 나와 내 가족이 이처럼 처참하게 차 속의 주역들이 될 거라고는 상상해보지 못했다. 차 안에서 의식이 불분명한 아들을 보며 나와 아내는 미칠 것만 같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제발 별일 없이 무사하기만을 기도드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의료진들이 빠르게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뇌 CT 검사를 실시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한 가운데 기도를 드리며 기다렸다. 아들이 침대에 실려나오고 의료진이 보호자를 불렀다. 긴장 속의 침묵이 흐른 뒤 “다행히도 뇌 CT상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하는 설명을 들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들의 머리에 문제가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얼굴이나 팔 등이 긁히고 찢어진 곳이 보였지만 일단 치명적인 문제는 없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직 의식이 온전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에게 정형외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등 여러 의사들이 다녀갔다.
성형외과 의사가 오더니 “턱 찢어진 곳을 꿰멜 테니 준비해주세요” 하자 간호사들의 손이 바빠졌다. 국소마취가 되었음에도 한 땀 한 땀 꿰멜 때마다 “아파요! 아파요!” 하고 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아파왔다. 그런데 그때 “아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하고 간호사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 맞다. 아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도 못 찾고 누워있는 안타까운 사고환자들을 많이 보았을 간호사의 매정한 듯하면서도 정이 담긴 이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아픔과 고민들이 괴롭긴 해도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임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아들의 의식이 꽤 명료해졌다. 모두가 믿어지지 않는 큰일을 당해 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본인은 더욱 더 이 모든 일이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몸의 이곳저곳에 줄을 달고 거즈와 붕대를 붙인 채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준석아! 너 정말 큰일 날 뻔 했어……”라고 한 후 아내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해요. 엄마…….”
아들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녀석이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그래! 이 나쁜 꿈은 금세 지나갈 테니 힘내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라. 우리 아들…….”
자꾸만 목이 메어왔지만 태연하려 애쓰며 말했다.
사고 이후 한동안 사무실이나 집에서 멍하니 앉아 있노라면 자꾸만 아들이 쓰러지던 사고 당시 장면이 떠올라 힘이 들었다. 때론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괴로워서 몇 번을 울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전쟁터에서 화살이나 총알이 바로 귀 옆을 스친 기분 같은 것이다. 내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뻔한 아찔했던 절대위기의 순간에 신은 나와 아들과 우리 가족을 건져주셨다.
요즈음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는 시편(121:7)의 말씀을 자주 되뇌곤 한다. 지켜준다는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목이 아플 만큼 울컥해지곤 한다.
이제 그 무서웠던 악몽은 정말 지나갔다. 아들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기적적으로 건져진 아들의 생명을 생각하면 나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는 날까지 아무리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도 모자랄 것이다. 난 지금 서서히 그날의 나쁜 꿈속에서 겪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을 넘어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며 살아가려 한다.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내 곁에 있음에 늘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