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등짝
- 연도2005년
- 수상동상
- 이름정성헌 과장
- 소속첨단종합병원 신경외과
“차르르 차르르….”
낡은 자전거 한 대가 제 몸무게의 두 배나 되는 아빠를 싣고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의 텅 빈 공터 사이를 꼬물거리듯 달린다. 난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용민이의 땀 내음과 숨소리를 즐기며 별이 몇 개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본다.
어릴 때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삼수초등학교 뒷산에 있는 충혼탑으로 산책을 가셨다. 충혼탑 주변 잔디밭에 누워 아버지의 온갖 무용담을 들으며 오늘처럼 맑은 밤하늘을 보았었다. 막내였던 나는 늘 아버지 등에 업혀 내려오기 일쑤였는데, 아버지의 그 넓은 등이 주는 푸근함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안락한 보금자리로 자리잡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신경외과 과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였고, 함께 수련을 받았던 수영이와 맥주 한잔을 하기 위해 우리 집 근처 노천 카페에 들렀다. 집까지는 약 1Km 조금 더 되는 거리로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서인지 걸어 갈 엄두가 나질 않아 아내에게 전화해 차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 아내는 요즘 술자리가 잦은 내게 화도 났겠지만, 운동 삼아 걸어오라며 나무랐다.
수영이는 낄낄거리며 “형수에게 혼났구나.” 했다. 몇 잔 더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수영이가 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 저기 용민이 아닌가?” 그래, 맞았다. 용민이였다. 제 또래들보다 조금 크기는 해도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길 옆 자가용들 틈에 제 자가용(자전거)을 주차시키고 열심히 열쇠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으로 카페에 들어서면서 외쳤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데리러 왔으니까요.”
어려서 결핵을 앓았던 나는 늘 건강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해서 나처럼 몸이 약한 아이를 낳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이 낳는 일에 무심했었고, 손이 귀한 집에 딸을 시집 보내신 장모님은 늘 노심초사 하셨다. 아이 없이 공중 보건의 근무를 마친 후, 용민이가 엄마 뱃속에 생기던 해 나는 인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어 4년의 신경외과 수련과정은 혹독했다. 어쩌다 집에 오면 용민이가 낯을 가렸다. 이모부가 오면 “아빠” 하고 달려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종사촌들이 아빠라고 부르니까 저에게도 아빠가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전문의를 취득하고 전임강사 발령이 늦어져 해남에 있는 종합병원에 몇 달 몸담으면서 용민이와 나는 처음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여섯 살 때부터 낚시를 곧잘 따라다녔는데, 새벽에도 낚시 가자면 눈 한번 비비지 않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칸 반짜리 작은 낚시대로 월척도 올렸다. 월척을 올리던 날 녀석의 허풍은 날 능가했다.
“아빠! 물속으로 끌려갈 뻔 했어요.”
용민이에게 잡힌 그 떡붕어는 몇 달간 우리 집 냉동실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의무적으로 용민이 손에 들려 나온 붕어를 감상해야 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만 했다.
녀석의 유머감각은 탁월하다. 어느 날 집에 전화를 했는데 용민이가 받았다.
“~세요. 용민인데요. 누구세요?”(용민이는 전화기를 집어 들면서 동시에 ‘여보세요’라고 외치기 때문에 실제 통화하는 사람에게는 ‘~세요’만 들린다.)
“아빠다. 우리 용민이 지금 뭐하나요?”
“전화 받고 있잖아요.”
“그럼 전화 받기 전에는 뭐했나요?”
“전화 받으려고 달려 왔죠.”
레지던트 때 타고 다니던 작은 프라이드 승용차를 스포티지로 바꿨을 때였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는 아빠에게 마중 나온 용민이가 한마디 했다.
“아빠! 아빠 차가 커졌어요.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러나 봐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용민이가 어느 날 600점을 맞아왔다. 두 과목을 보았는데, 하나는 600점, 다른 하나는 0점을 받은 것이다. 녀석은 집에 오는 길에 이 상황을 엄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척 고민했던 모양이다. 두 시험지를 동시에 두 장을 들고 보는 순간 마침내 해결된 것이다. 100점보다 더 한 600점이 되었으니까.
어느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용민이와 동생 용진이는 호들갑을 떨었다.
“용진아!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로 다녀 가셨나봐!”
엄마와 아빠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선물을 뜯어내며 신이 난 녀석이 동생에게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이 들리고 말았다.
“용진아! 실은 이거 엄마하고 아빠가 사다 놓으신 거야.”
용민아,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훗날 너의 어떤 실수도 어떤 시행착오도 모두 용서할 생각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미워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에게 못난 부분이 많은 만큼 너에게도 못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나도 실수 하듯이 너도 실수할 수 있다. 나에게 단점과 결함이 있다고 내 자신을 미워하지 않듯이 너에게 단점과 결함이 있다고 너를 미워하지 않겠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상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너는 이미 나의 모든 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나에게 삶의 용기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처음으로 자전거 뒤에 아빠를 싣고 신나게 달리고 있는 용민이에게 말했다.
“용민아, 아까 수영이 삼촌에게 받은 만원, 엄마에게 말 안 할게.”
“고마워요. 아빠!”
우리는 낄낄 거리며 밤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옛날 내 아버지의 등만큼이나 세상에서 가장 넓은 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