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사수필문학상
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버려진 침대처럼
- 연도2005년
- 수상동상
- 이름채명석 원장
- 소속당감제일외과
출근길에 며칠째 아파트 구석에 버려져 있던 침대가 재활용 수거 차량에 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침대는 닳아진 신발처럼 모서리마다 해어져 있었다. 비 때문에 젖은 매트리스를 실어 내는 사람들이 애를 먹고 있었다. 차에 실리는 매트리스에서 한 쪽 다리가 툭 떨어져 나갔다. 침대를 실은 차는 떠나고 땅에는 떨어진 한 쪽 다리만 남아 있었다. 다리는 한 쪽으로 굽어져 있었다. 저렇게 굽어지도록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뎠을까. 어깨를 짓누른 무게를 얼마나 털어내고 싶었으면 다리를 떼어 놓고 갔을까. 한참 동안 그것을 쳐다보았다. 침대가 떠난 자리에서 나는 굽은 다리처럼 슬퍼졌다. 마치 큰 징이 한번 울린 것처럼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안녕하세요. 쪽방 상담소에서 왔습니다.”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하자 심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였다. 습한 방 안 공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살집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 남자가 쪽방 한 구석에 술에 취해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초췌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두 평 남짓한 방바닥에는 언제부터 깔려져 있었는지 얼룩이 심한 이불이 뒹굴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언제 먹었는지 모르겠는 라면 면발이 냄비에 말라붙어 있었다. 그 옆에 검은 봉지 안에 김치 몇 조각이 남아 있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방바닥은 한 사람이 더 앉을 만한 공간도 없을 정도로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우리는 이불을 한 쪽으로 치우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왜 왔는데요?”
어눌하게 뱉어내는 말투가 우리의 갑작스런 방문이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다. 뼈만 남은 그의 몸은 한 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했다. 복수로 배가 불룩하고 눈빛이 노란 것으로 보아 간경화가 이미 많이 진행된 것 같았다. 우리는 가지고 간 5% 포도당 주사액에 비타민을 섞어 놓아주며 간단한 방문 카드를 작성했다. 처음 보았을 때 오십대는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주민등록번호를 보니 사십대 초반이었다. 의료보험카드는 있는지,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앓고 있는 간경화로 인한 의료보호1종 대상자로 정부에서 매달 주는 삼십만 원 정도로 생활하고 있었다. 방세로 십만 원을 내고 나머지 이십만 원 정도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다.
우리는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걱정하는 말에 냉랭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술이 깨면 쪽방 상담소에 나와 병원에 가보기로 약속했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의 불그스레한 불빛은 꺼질 듯 흔들거렸다. 움막 같은 방에 그를 버려두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빛보다 그림자로 더 오래 살아온 그의 삶을 해종일 앞뜰에 내어 놓아 말리고 싶었다.
일주일 뒤 그는 부산 의료원에 입원을 했다. 한달 정도 입원을 한 후 그의 모습은 처음보다 많이 좋아 보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술을 끊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우리는 퇴원한 그가 다시 술을 마시지 않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리어카로 과일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약간의 돈을 마련해 주었다. 심한 관절염으로 걷는 것조차 불편했던 그는 장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면학원 골목에서 귤 서너 상자를 사다가 하루 종일 팔았다. 한 상자를 다 팔면 사오천 원이 남는다고 했다. 우리도 가끔 진료가 끝나면 들러 과일을 사가지고 가곤 했다. 하지만 과일 장사로 한동안 술을 끊었던 그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자기 자리가 있어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사람들이 장사를 못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한번 마시기 시작한 술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장사를 하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찾아갔을 때도 그는 방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 거의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까지 마시는 것이 쪽방 사람들의 특성이었다.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인데, 무슨 말을 해도 시비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그 이후에도 그러기를 반복했다. 그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 후 몇 달 동안 그의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육 개월 정도가 지난 여름이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아직 파악되지 못한 새로운 쪽방을 찾아가 진료를 하고 상담을 했다. 그곳에서 그와 술을 자주 마시던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서 그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두 달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거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화장을 했을 거라 했다. 도시의 한 구석에 버려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깡마른 얼굴에 아픈 배를 움켜쥐고 거리에 붉은 피를 쏟아내며 죽어갔을 모습이 떠올랐다.
아파트 한 구석에 버려져 수거 차량에 실려 간 침대처럼 그도 어느 거리 한 모퉁이에 버려져 화장터로 실려 갔을 것이다. 누구의 관심도 없이 거리에서 치워졌을 것이다. 침대가 남기고 간 굽은 다리를 쳐다보며 그를 생각한다. 절뚝절뚝 다리를 절며 걷던 그는 무엇을 떼어 놓고 갔을까. 늘 그늘졌던 삶을 다 털어버리고 더는 주눅들지도 아파하지도 않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