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마의 별밤

신 명 준

 학창시절부터 지녀왔던 소망 하나가 이루어졌다.

 지난 봄, 동료의사 한 분이 아프리카 케냐로 가는 봉사활동에 동참해 주기를 권유해 왔다. 전공으로 외과를 택한 것도, 사진에 대한 애착도 지구 저 편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과 거기에서 의료 활동을 펼쳐보고 싶었던 꿈과 무관하지 않다.

 개원한 지도 어언 십 수 년, ‘아프리카’는 해마다 화두로 따라 다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밀려 청년기의 꿈은 아스라이 먼 곳에 접어두고 산다. 지구저편에 있는 거리만큼이나 가뭇없는 일이다. 서재 책상 위에 아프리카 사진을 놓고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번에는 아내도 더 이상 말리지 않는다.

  여름 방학 기간이라 중국으로 유학 간 맏이와 동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승낙을 했다. 팔월 초로 출국 날도 정해졌다. 그런데 아프카니스탄으로 떠난 샘물교회 봉사 팀이 현지에서 납치되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케냐의 오르마 지역은 이슬람권이라 말리는 사람이 더 많다.

  더위와 질병이 기다리는 천애(??)의 땅, 물이 없어 일주일동안 세수는 물론 양치도 못한다는 곳, 우리가 먹는 예방약 라리암으로는 듣지 않는 악성 말라리아가 기다리는 곳이다. 종교적 갈등으로 신변의 위협마저 배제할 수 없는 곳으로 아들과 동행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갈등 속에 운명의 날은 다가왔다. 긴장감과 설렘을 안은 여정은 예상보다 멀고 험하다. 하루 반 동안 탄 비행기 멀미가 채 가실 새도 없이 비포장 길을 버스로 몇 시간이나 달린 다음 악어 떼 득실대는 황토 빛 강물 따라 한 시간을 걸어 목적지인 옴바사 마을에 도착했다.

 듣던 대로 물이 귀한 곳이다. 여인들이 머리에 큰 물독을 이고 한 시간을 걸어가서 길어온 물은 누렇고 뿌옇다. 이 물로 생활수는 물론 음료수까지 감당해야 했다. 사람은 참 모진 동물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 말이 명언이다. 그 물에 적응하기까지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가져 간 물은 하루 만에 동이 나버리고 말았으니까.

  말로만 듣던 열대지방 모기의 극성은 대단하다. 열나고 의심스러운 이들을 PB smear 해보면 반 이상이 말라리아 양성 반응을 보인다. 학교 교실을 숙소 삼아 큰 모기장을 치고 자던 일행은 이 소식을 접하자 침낭을 머리끝가지 뒤집어썼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아들이 행여 모기장을 걷어 찰까봐 몇 번씩 일어나 모기장 끝을 여미곤 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낯선 이국땅 찬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어도, 몸은 천근만근 피곤했지만 정신은 초롱초롱하다. 오래도록 바라던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나도 모르는 새에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가슴은 더운 피로 뛰었다.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도 다음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우리 손길을 기다리는 현지인들을 웃음으로 맞았다.

 우리의 만남은 의사와 환자로서의 상면을 초월한다. 문명인과 비문명인의 상봉이라고 할까. 타임머신을 타고 만난 현대인과 고대인의 만남이라고 할까.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 온 그들에게 나의 존재는 어떤 것일까. 티끌만한 경계나 선입견 없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눈망울 - 지금껏 알고 있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것은 현지인의 눈빛만이 아니다. 밤이면 별들이 무릎 위로 좌르르 쏟아질 듯하다. 카메라에 담긴 별들은 맑은 구슬을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 놓은 듯 영롱하다. 노출 시간을 늘리자 은하수까지 현상되어 또렷하다. 지구상 어디에서 이런 신비를 맛볼 수 있을까? 내가 사진작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행복하고 창조주의 신비에 두 손 모아 감사하고 싶어진다.

  고국에서는 한창 잠에 취해 있을 새벽 세시, 지평선으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순한 눈빛들은 아침햇살보다 더 해맑기만 하다. 의사는커녕 의술이라고는 처음 대해보는 그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우리의 손끝에 마냥 천부의 신체를 맡겨놓는다. 그들의 상처를 만지다보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숭엄함이 인다. 요즈음 저수가 의료정책으로 의사의 진료행위가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곤 했는데, 의술은 인술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사람 한사람을 정성껏 치료했다. 한 주일동안 돌본 환자의 수가 천명에 이르렀으니 그 지역 인구의 사분의 일에 해당된다고 한다.

  마취제며 주사기 등 외과 진료용품을 다 소비하고 현지 병원에 의뢰하여 가져 온 것조차 동이 나버려 내과 진료를 하게 되었다. 준비해 간 발전기로 생산한 전기를 이용, 초음파 검사도 하고 밤이면 주민들에게 영화 상영도 했다.

  힘들어도 아들과 함께 보낸 탓인지 일주일이 하루처럼 짧다. 아들에게, 학비 벌어주는 사람, 엄마에게 잔소리 듣는 사람쯤으로 비쳐졌을 아빠의 존재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았을까. 부자 사이가 한 뼘은 더 가까워진 듯하다. 공부 때문에 긴 세월 떨어져 지낸 아들은 어느 새 훌쩍 성숙해져 내 곁에 한 걸음 다가와 있다.

  떠나오는 날 아침,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나타났다. 손바닥에 깊은 열상을 입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예리한 물질에 찔려 손바닥 피부관이 훌렁 벗겨졌다. 인대와 혈관까지 노출되어 있다. ‘저 상태로 며칠만 두면 불구가 되고 말 것이다’는 긴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짐을 풀었지만 실과 바늘뿐, 마취제는 동이 난 상태였다. 참을 수 있다며 이를 악문 꼬마를 한 바늘 한 바늘 꿰맬 때 전신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소년의 입술 사이로 표현 못 할 신음이 새어나왔고 초조와 긴장의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마취 없이 봉합하는 긴 시간을 그는 ‘아야’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숨죽여 이 광경을 지켜본 일행은 기도를 올렸고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다. 처치를 끝내고 피 묻은 손으로 그를 꼭 껴안았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 눈을 감으니 지난 한 주일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머리 위로 쏟아지던 별빛이며 아픔을 참던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릇, 생명은 소중하다. 누구나 축복 속에서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명의 혜택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아프리카 - 사고로, 질병으로 생명의 위협 속에 속수무책으로 던져진 사람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일생 동안 한 번 경험해 볼까 말까 하는 치명적인 말라리아를 일 년에 몇 차례씩 앓아도 의료혜택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풀잎처럼 스러져 간다.

  아내와 한 약속을 되씹어 한 번 더 다짐 한다. ‘나의 손길 기다리는 그들을 찾아 일 년에 한 두 달이라도 봉사하며 살리라. 아이들도 저 만큼 성장하여 아빠의 숨은 모습까지 이해하게 되었으니.

   봉사 활동한다며 찾아간 아프리카 오르마는 내가 가져 간 어떤 약, 어떤 의술보다도 더 크고 진한 감동을 거꾸로 내게 안겨주었다. 학창 시절부터 꿈꾸었던 아프리카, 그 열사에서의 한 주일은 오르마의 빛나는 별처럼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보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감격의 순간들을 담아 사진 전시회를 열기로 하고 준비를 위해 수시로 온라인상의 만남을 갖고 있다. 컴퓨터에 소년의 손을 꿰매던 수술 장면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 밑에는 상황 설명과 함께 수술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 아이를 꼭 껴안아 주더라는 글귀가 있다. 정작 안아줄 때의 사진은 왜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순간에 저도 같이 울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