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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봄비오는 날 할아버지 생각

  • 연도2011년
  • 수상은상
  • 이름신종찬
  • 소속신동아의원

마당 가득 봄비가 내렸다. 살구나무가지엔 분홍 꽃망울이 다닥다닥 달려 있었고 두엄더미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왔다. 경칩(驚蟄)에 농사지을 물이 넘쳐나니 할아버지는 춘수는 만사택(春水滿四澤)이로구나 하며 돗자리 짜던 손에서 고드래 돌을 가만히 놓았다. 슬며시 필사본 당음오언(唐音五言)을 펼쳐 “마상에 봉한식(馬上奉寒食)하니…” 를 읊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돗자리를 엮곤 했다. 달그락 달그락 고드랫돌소리를 따라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왕골이 엮어져 격자무늬 고운 돗자리로 태어났다. 상큼한 왕골풀 냄새가 방안에 가득한 날이었다. 어린 나는 먹 갈고 붓 적셔 신문지 위에 서툰 글씨로 ‘소년이노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을 써 내려갔다. 할아버지는 “이룰 성(成)자 끝에서는 붓끝이 금방 올라가지 말고 힘을 주어 잠깐 쉬었다 올라가야지!”라며 말끝에도 힘을 넣었다.


할아버지는 글 읽기는 즐겼으나 큰 선비는 아니었고 어린 시절 공부하기 싫어해서 생긴 일화도 있다. 십여 대 종통(宗統)을 이으려 백부님께 양자를 가신 할아버지는 일가의 주손(胄孫)이니 독선생(獨先生)을 두고 한학을 공부했다. 주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책읽기가 싫어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는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결연히 선언했다. 일제 강점기라 친구들처럼 신학문을 해도 써먹기 어려운데 구(舊)학문을 배우는 것이 더 싫다고 했다. 손자의 뜻밖의 반항에 당황한 나의 고조부는 불호령을 내렸다. “공부하기 싫으면 굶거나 하루에 나무 아홉 짐을 해야 한다!” 지엄한 분부를 지키려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종일토록 나무 아홉 짐을 했다. 이에 감탄하신 고조부는 “이제 공부는 남들이 무식하다 하지 않을 정도는 했으니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된다”고 허락하였다.


할아버지는 십대 후반에 이미 인근에서 가장 힘센 장사(壯士)였다니 학업을 그만해도 집안어른들로부터 신뢰를 얻었을 성싶다. 장대한 풍모의 할아버지 발에 맞는 고무신은 오일장에서 제일 큰 것이었다. 가슴을 다 덮는 할아버지의 헌헌장부(軒軒丈夫) 수염은 어릴 적 동무들에게 내 자랑거리였다. 서울에서 노년을 보낼 때 수염이 멋진 노인이라고 초등학교 예절교육 행사에 초대받은 적도 있었다. 머슴 둘 데리던 집 장손인 할아버지는 스무 살 무렵 상투를 자르고 수 백리 밖 울산으로 가출하여 머슴살이를 했다. 그때 몸이 고달팠지만 마음은 편했단다. 그러나 기필코 아들을 낳아야 할 할머니가 딸만 낳고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집으로 곧 돌아왔다. 할머니는 “베 주우적삼 입고 집나가서 핫옷(솜옷) 입고 오셨다”고 그 때를 회고했다.


할아버지가 열두 살일 때 열여섯 살이던 할머니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고 평생 두 분 금슬이 좋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너그러워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잘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말수가 적었던 할아버지지만 내게는 자상했다. 산이나 들에 나가 꼴 베거나 김매며 들풀들의 이름과 쓰임새를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할미꽃과 여뀌는 독초이니 절대 소에게 먹이면 안 되느니라.” 또는 “여름에 소가 입맛을 잃을 땐 너삼을 여물과 같이 삶아 먹이면 입맛이 돌아온단다”고 했다. 나는 이때 알게 된 바랭이, 비름, 쇠비름, 속새, 띠, 도토라지, 고들빼기, 엉겅퀴 등의 들풀들과 늘 친숙하다.


할아버지의 나뭇짐은 아주 컸다. 보통 일꾼의 나뭇짐은 대문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할아버지 것은 둘로 나누어야 했다. 이른 봄 할아버지 나뭇짐에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 섞여 있었으니 물이 살짝 올라 부끄러운 듯 꽃망울이 부푼 진달래와 수수꽃다리였다. 나뭇짐을 뒤져 꽃가지를 골라 병에 꽂아 놓으면 한 달이나 먼저 봄꽃을 볼 수 있었다. 여름이면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시원한 사랑 대청마루로 잠자리를 옮겼다. 저녁이면 매캐한 모깃불 옆 멍석에 잠든 나를 대청에 옮겨 당신의 팔을 베이고 재웠다. 할아버지의 지극한 손자사랑은 커다란 합죽선 바람으로 내게 전해왔다. 올빼미가 우후후 하고 울어대는 한밤에 겁에 질린 나는 할아버지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피를 토하며 울어댄다는 소쩍새소리도 등나무 언덕에서 내려오는 으스스한 사태(沙汰)소리도 할아버지 곁에 누우면 무섭지 않았다.


황소 울음소리로 저녁놀이 더 붉은 어느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판을 걸어오며 한 말씀이 있다. ‘강산은 만고의 주인이고 인물은 백년 안에 살다가는 손님(江山萬古主 人物百年客)’이라고 한 그 말뜻을 되새겨본다. 소를 식구처럼 여겼던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마다 쇠죽을 끓였으니 새벽 구들이 늘 따뜻했다. “서걱!”하고 무쇠솥뚜껑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구수한 냄새가 방안까지 퍼져왔다. 볏짚 외에도 시래기에 콩깍지와 등겨 등을 넣어 정성스레 끓였으니 익은 소여물에서 된장국냄새 같은 것이 나기도 했다.


고향에서 이웃끼리 다투다가 누가 옳은지 판단해달라고 가끔 할아버지를 찾아올 때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장죽을 물고 지그시 눈감으며 마치 소리 없이 흐르는 깊은 강처럼 양측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 후 내일 보자고 했다. 감정이 날 땐 일단 기다리며 진정하는 법이라 했다. 다음 날 양측을 따로 만나 말씀을 나누고 나면 그들은 대체로 화해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는 도립병원에서 뼈 속을 긁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농사철에 무논에서 자주 일하다보니 새끼발톱무좀이 뼈로 파고든 거였다. 할아버지는 전신마취 대신에 뼈 속까지 완전히 마취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통증을 참을 수만 있다면 입원하지 않는 등 편리하다는 설명에 국소마취를 선택했다. 퉁퉁 부은 살을 절개하고 예리한 칼로 뼈를 긁어내는 소리는 빠각빠각 내 귀를 파고들었다. 수술대 위엔 붉은 피가 낭자하였다. 할아버지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고통을 참으며 조용히 숨만 쉬었고, 당신의 손을 잡은 내가 오히려 파랗게 질려 있었다. 수술을 마친 집도의사가 이렇게 잘 참는 분은 난생 처음이라고 놀랐다. 할아버지는 태연히 “선생님 참 용하십니다”라 답하며 긴 수염을 쓰다듬었다. 삼국지에서 천하명장 관운장이 태연히 바둑을 두며 독화살 제거 수술을 받는 후 천하명의 화타(華陀)와 대화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때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보람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내게 의사가 되라고 권하였다. 이렇게 내가 의사가 되도록 길을 열어준 분이 할아버지였다. 동생이 태어나자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님께 맡겨진 후 사랑방에 자는 ‘사랑방 아이’로 자랐다. 손님들 앞에서 내게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외게 하시곤 흡족해하시던 할아버님 모습이 오늘따라 더 그립다. 할머님을 먼저 보낸 후 열네 해 동안 나는 할아버님 곁에 있었다. 봄비 오는 날 내 마음속 할아버님 자리는 새벽 군불 땐 아랫목처럼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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