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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나는 오발탄을 쏘지 않았다

  • 연도2012년
  • 수상은상
  • 이름조용수
  • 소속전남대병원

“16살밖에 안 되는 아이였어.” 선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리지만 주관이 확실했다고 한다. 삼촌이 있었음에도, 환자 상태에 대해 누구보다 본인이 알고자 했다. 선배는 건조하게 상태를 설명했다. 일말의 희망도 없다는 비관적인 얘기. 그리고 내밀어 진 DNR(연명치료중지) 동의서. 16살 아이도, 또 다른 보호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체념할 수밖에 없다는 걸. 하지만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교수님, 저희 아버지 살려주십시오.”

 

그 판단은 옳았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는 DNR을 거부했고, 환자는 결국 살아났다.

 

16살. 아직 앳된 소년.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꽉 깨문 입술. 선배에게 들은 아이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어느 모로 보나 지금 내 눈앞의 여자애와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다.

 

물론, 여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두려워 떨고, 도움을 바라게 된다. 수도 없이 보아왔다. 이제 갓 스무 살 남짓의 여자애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다.

 

나는 눈앞의 종이에 연신 그림과 글씨를 써가며 결정을 재촉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런 시술들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회복 가능성은 무척 낮습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문장들을 골라가며 덧붙였다. “요는, 편히 보내주느냐? 끝까지 해보느냐? 하는 거죠.”

 

환자의 알 권리라는 건 허울 좋은 껍데기다. 단지 몇 분(分)의 설명만으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문제에 답을 내어야 한다. 같은 상황의 환자를 수차례 보고, 어떤 득실이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내게도,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 그걸 몇 마디 말로 압축하고는 보호자의 결정을 종용한다. 사람의 생과 사라는 책임의 무거움을, 보호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안전장치를 풀고 총을 쥐여준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이제껏 그를 홀로 돌봐 준 이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희박한 확률에 기대어, 그의 고통을 더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방아쇠를 당겨 고통을 종식해 줄 것인가? 날벼락을 맞은 여자에겐 숨 고를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흰 가운의 남자는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옆에서 채근한다.

 

열 명 가까운 친척들이 모였지만, 모두 한 발 물러섰다. 아버지의 형이라는 사람도, 동생이라는 사람도. 스무 살 남짓의 아이가 미성년자가 아님을 강조하며, 그녀에게 결정권을 준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방아쇠를 쥔 아이는 평생,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총소리에 놀라 잠에서 깰지 모른다.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미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존중받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았고, 그녀가 가지는 모든 권리가 자신을 옥죄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여자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그녀를 설득했다. 희박한 가능성과 경제적 이유를 장황하게 강조했다. 최종결정은 네가 하는 것이지만,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들은 그렇게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기를 유도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대신 나서서 방아쇠를 당겨주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짜증 났다. 미적거리는 사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사이 한 걸음씩 죽음을 향해 내딛는 환자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선배가 말한 16살짜리 남자아이의 모습이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살려달라는 한 마디였다.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 서고 싶은 건 아니었다. 부탁받는 갑의 위치에 서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눈앞에 환자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맛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환자의 생환을 약속할 수 없었고, 낮은 가능성을 부풀려 말할 수 없었다. 결과를 감당해 내는 건 순전히 보호자의 몫. 살려달라는 말 대신에, 이제 그만 끝내달라는 그들의 요구 또한 당연한 그들의 권리였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실 포기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환자였다. 적지만 소생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했다. 어떻게 해도 안 될 것 같은 환자가 있는가 하면, 어쩌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환자가 있다. 이 경우엔 명백히 후자였다.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만 있다면, 보호자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봤던 환자도 그랬다. 결국, 환자는 사망했고 나는 멱살을 잡혔다. 섣불리 기대를 주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살려달라는 간절한 바람은, 살리지 못한 의사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픈 기억은 의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생사에 절대란 없고, 나는 어지간해선 보호자들에게 확신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로 인해 이 환자는,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권총은 어느새 내 손으로 옮겨와 있었다. 방아쇠는 묵직하고 차가웠다.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모른 척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살리기 힘든 환자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고 자신을 타이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의사이고 생명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동안 떠나보낸 많은 환자들에 대한 상념들. 속 쓰림으로 위장약을 찾고, 술 마실 기운도 없이 방구석에서 눈물만 흘리던 기억들. 그 느낌의 파편들이 나를 덮쳐온다. 그래. 후회하는 것보다 차라리 욕먹는 편이 견디기 쉬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의사란 참 몹쓸 직업이다.

 

“살고 싶지 않나요?” 긴 한숨과 함께 말을 걸었지만, 환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환자들의 틈바구니 응급실에서, 그를 보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의 포기는 사형선고가 될 것이다. 아이의 울음을 모른 체하는 어미가 없듯, 환자의 발버둥을 모른 체하는 의사란 없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결코 없다. 환자가 내 손을 떠나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들은 그동안의 우유부단함과는 달리 빠르게 움직였다. 멈춰 서면 자책감이 들까 봐 두려웠을까? 그만 기계 호흡기를 떼고 편히 보내달라고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옮겨 갈 작은 병원들을 알아보고 다녔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환자를 살폈다. 복잡한 동의서가 필요하지 않은 비침습적인 시술을 했다. 편법을 사용해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쉬지 않고 해나갔다. 그들에게 그런 나의 모습은 눈엣가시였다.

 

“어차피 죽을 사람 아니오?”라며 추가되는 검사료에 불만을 표해, 혈액 검사조차 자주 할 수 없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켰다. 다행히 주말이라 이송 가능한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을 더 화나게 했다. 쓸데없는 짓 그만 하라며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는 나대로 오기가 생겼다.

 

주말이 지나면 즉시 환자를 이송해 가겠다고 통보해 왔다. 미련은 없었다. 주말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생사의 주관은 의사의 몫이 아니기에, 아쉬움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송이 결정된 날.

 

환자는 깨어났다.

 

70분이라는 긴 심정지 시간을 비웃으며, 단 사흘 만에 의식을 완전히 회복했다. 실낱같은 기대가 이루어지는 순간. 현실이기에 기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환자와 가족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누구도 내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는 그를 살릴 수 있다는 확답을 주지 못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평생 후회할 길을 택할 뻔했다. 나는 그들의 선택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들의 마음속에 부채 의식이 남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묵례를 한다. 살짝 고개를 숙여 대답한 후 돌아섰다. 내 역할은 이걸로 끝이다. 그들은 이제 미래를 살 것이다. 기쁨을 나누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니까.

 

나는 오발탄을 쏘지 않은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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