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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밥 한 술

  • 연도2012년
  • 수상동상
  • 이름유동욱
  • 소속서울효요양병원 내과


지환이는 18살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는 집에 오자마자 인사도 하기도 전부터 큰소리로 ‘밥-’이라고 외치곤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다. 저녁 준비로 분주한 부엌을 아까부터 몇 번 씩이나 기웃거리더니 식탁위에 올려놓은 찬 몇 점에 그만 국이 다 끊기도 전에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버린다. 올해 들어 훌쩍 키가 자란 그는 두 달 전 운동회 축구시합에서 왼발로 골을 넣어 게임을 승리로 이끈 학급의 영웅이자 보름 전 도(道) 수학경시대회에 나가 당당히 1등을 꿰어 찬 조동리(鳥洞里)의 명물이기도 하다. 장래희망이 정형외과 의사인 그는 식당일로 무릎관절이 성할 날이 없는 엄마를 치료해주겠다며 장난스레 무릎을 간질이는 아직은 철없는 사춘기 아이 같지만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차비를 아끼겠다며 학교까지 10킬로나 되는 거리를 몰래 걸어서 왕복할 만큼 속 깊은 아들이기도 하다. 철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나이에 헛헛한 배를 안고 먼 거리를 뛰어왔을 그가 제일 잘 하는 말, “엄마, 밥 줘!”였을 것이다.


김씨 할머니는 22병동의 골칫거리 환자였다. 옮기는 병실마다 싸움이 붙었고 일견 욕쟁이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이었다. 15년간 매일 소주를 두병씩 마셨다는 여자환자치고는 연령에 비해 간이 잘 견뎌 준 것 같았지만 처음으로 외래를 방문한 지 3년이 지난 해 마침내 그녀는 간경화 말기에 간암 판정을 받고 말았다.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병이니만큼 언제부턴가 그녀는 부쩍 자주 병원에 출몰하고 있었다. 내과의국에서 차례로 돌아가며 전공의들이 그녀의 주치의를 맡아 봤고 당시 내과 1년차였던 나 역시 그해 가을 그녀의 주치의가 되었다. 얼마 전 진단명에 치매를 하나 더 추가한 그녀는 나날이 인격이 괴팍해져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나를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달랐다. 회진시간 병실을 돌아다니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면 하던 말도 멈춘 채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다 꼬박 같은 말을 건네곤 했던 것이다.? “밥은 묵었냐?” 점심도 거른 채 아침부터 발바닥에 불이 나게 병동과 응급실을 오가던 내게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치매 탓이었다. 그녀에겐 몇 가지 기이한 언행이 있었는데 끝없이 되풀이되는 같은 이야기, 특히 아들자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녀에게 말이라도 걸어 이야기가 끊기게라도 되면 그 자리에서 욕 한 바가지는 물론이거니와 뺨을 맞는 일도 있었다. 어떤 날은 섬망이 겹쳐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병이 깊어질수록 조용한 새벽이 되면 ‘내 새끼 배고프다’, ‘싸게 밥상 차려야 한다’며 온 병실을 다 깨울 만큼 수선을 떨어대곤 했다.


22병동에서 지환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지환이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현재형으로 김씨 할머니의 머릿속에 살고 있는, 15년 전에 죽은 그녀의 아들이었다. 치매라는 질환의 성격상 최근의 기억은 지워지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에 대한 기억만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미한 형편에도 그는 성실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아 지방의 모 의과대학에 진학을 했고 어릴 적 바람대로 정형외과 전공의가 되었다. 그리고 추석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모처럼 오프를 받은 그는 버스 안에서 고향집 밥을 떠올리며 허기진 배를 다독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턴가 홀연히 낮술을 한 대형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섰고 그날 그녀는 설레발치며 괜스레 일찍 해둔 밥이 행여 식을까 이불장 두터운 이불 틈에 따뜻이 묻어둔 공기밥을 오래도록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 앞세워 보낸 것도 못난 어미의 죄였을까. 내가 다리만 아프지 않았어도 아니, 아픈 척만 하지 않았어도 그러면 아들이 지방으로 대학을 가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그날 버스도 타지 않았을 텐데… 라며 그녀는 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김씨 할머니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괄괄한 욕쟁이 할머니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수가 줄어들고 종일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기 일쑤였다. 얼마 후 의식이 혼미해지기 시작한 그녀는 간성혼수로 진단이 됐고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보였다. 무슨 까닭인지 식사량이 현격이 준 탓도 있었던 것 같았다. 수액치료와 관장을 병행해가며 경과관찰 중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의식이 돌아왔다. 그토록 오랜 잠을 자며 그녀는 기억의 울타리 너머 어디까지 다녀왔던 걸까. 깨어난 할머니는 어떤 날은 놀랍게도 지환이의 모든 것을 또렷이 기억해내고 있는 듯해 보였다.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식사가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복수가 차올랐지만 간성혼수에 대한 염려로 함부로 약을 쓰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자리가 옮겨졌다. 할머니 곁에는 늘 간병인이 붙어 다녔다. 황달로 피부가 노랗게 물들어갔고 더 이상 욕을 할 입심도 한밤중에 밥상을 차릴 기력도 없어졌다. 주로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던 할머니는 혼자서는 밥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해가고 있었다.


9월엔 유난히 소화기내과 환자가 많았다. 새벽 두시까지 오더를 내다 쓰러져 잠이 들면 아침 6시에 회진준비를 하고 오전일과를 대충 마무리하기까지 빵 한 조각 먹을 시간이 없었다. 정오가 되어서야 버썩 마른 입술과 까끌한? 혓바닥에 물 한 모금 적실 수 있었고 이어 의자에 한번 앉아볼 틈도 없이 응급실과 병동으로부터 소나기 오듯 콜이 울렸다. 오후 2시나 3시가 돼서야 겨우 당직실로 들어가 다 불은 자장면을 입에 넣었고 입원환자가 불어 60명에 육박하자 종일 초코파이 하나로 버텨야 하는 날도 생겼다. 가까스로 틈을 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잠시 정신을 놓고 멍하니 변기 속 물을 바라보다 그대로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빈 창자에 뜨거운 밥 한술 얹기가 이토록 힘겨운 일인가. 엄마가 차려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이 수면 위로 아른거렸다.



저녁회진 시간이었다. 식판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로 분주한 병실에 은은히 퍼지는 국과 찬 냄새 때문에 입안에 침이 고이곤 했다. 김씨 할머니가 있는 병실로 들어섰을 땐 할머니에게 밥을 떠먹이던 간병인이 용변이 급했던지 잠시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침상 가까이 다가서자 할머니의 주름진 입꼬리를 타고 입안에서 국물이 힘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안스러운 마음에 숟가락을 집어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끌어 입안에 넣어주고 밥 한 술을 떠 물리려는 순간이었다. “밥은 묵었냐?” 내게 늘 하던 말이었지만 잠시 후 할머니는 한마디를 더 했다. “지환아, 어여 묵어라.” 이번에는 할머니의 눈가에서 투명한 국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간 홀쭉하고 키가 큰 나를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기억을 건너, 오랜 세월 그리움에 목마르던 맨밥 같은 생애를 넘어 지금쯤 어디까지 갔을까. 복수로 터질듯이 배가 불룩해지던 그녀는 며칠 후 간부전(肝不全)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밥상을 차리고 늘 그 누군가에게 밥 한 술이라도 더 떠먹이고 싶었던 한 여자가 떠난 육신에 오래전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 묻어둔 공기밥처럼 아직도 지환이의 무덤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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