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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마음의 산책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 피천득의 '수필'중에서

너무늦은용서

  • 연도2013년
  • 수상동상
  • 이름박관석
  • 소속신제일병원

“따르릉, 따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늦은 봄의 나른함에 취해 있던 내 정신을 깨웠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집어든 수화기 너머에선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70세 남자 환자인데 농약을 마시고 왔어요. 빨리 와주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간 응급실 한 구석에는 검은 피부에 깡마른 노인 한 분이 침대에 눕혀져 있었고, 뒤 따라온 할머니 손에는 겉면에 푸른빛 약물의 흔적이 선명한 농약병이 들려져 있었다. 순간 “아! 그라목손”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외마디의 비명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라목손은 죽음의 제초제로 조금만 마셔도 3-4일 안에 폐가 굳어져 호흡을 할 수 없어 서서히 고통 속에 죽어가야만 하는 맹독성의 농약인 것이다.

진찰을 하려고 다가선 환자의 얼굴에서 왠지 낮 익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나는 “이게 다 손자 때문이야.” 라는 한 숨 섞인 할머니의 한마디에 어렴풋이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3년 전 그날도 한 여름의 더운 날씨에 해수욕장에 놀러온 관광객들의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응급실이 한창 붐비던 시간이었다. 그 때 갑자기 피투성이의 작은 사내아이를 업은 채로 할아버지 한 분이 정신없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다. 온통 피와 땀으로 젖은 채 업은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까지도 그 분은 “제발 내 손자 좀 살려 주세요” 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진찰을 마친 후 나는 호흡과 맥이 끊긴 지 한 참 지난 아이의 주검 앞에서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던 할아버지께 사내아이의 사망선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응급실을 뒤덮고 있을 때 뒤이어 젊은 남자 한 명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고 그를 통해 사고의 전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해수욕장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죽은 사내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자였다. 워낙에 손이 귀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유독 할아버지를 잘 따라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고 했다. 마침 그 날도 예약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병원근처로 나와야했는데 어찌나 손자가 따라 간다고 보채던 지 도저히 뿌리칠 수 없어 함께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예약손님이 많은 탓에 손자가 미쳐 차에 타지 못한 것도 모르고 차를 후진하는 순간, 뒤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손자가 피를 흘리며 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막 떠나려는 차를 타려던 손자와 그를 보지 못한 그 분의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

사고가 있은 후 충격으로 할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한 채 한 동안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고 퇴원 후에도 손자가 죽어 뿌려진 바닷가 바위 위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바다 만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또 착하고 항상 순종적이던 아들도 아버지 탓에 아이를 잃었다고 하며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 급기야는 할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모진 말과 함께 그 분의 곁을 떠났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생각하던 손자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자식이 자기를 버렸다는 괴로움으로 고통 받던 할아버지는 결국 농약을 마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응급처치를 한 후 할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입원시키고, 할머니께 그라목손의 맹독성과 3~4 일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나는 “제발 저 양반 좀 꼭 살려주세요. 제발” 하는 할머니의 울음 섞인 간곡한 부탁을 뒤로한 채 긴 복도의 어둠속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길어야 3-4일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내 예상을 한 참이나 빗나가게 할아버지는 숨이 차고 타는 듯 한 식도와 온몸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일주일을 넘게 버티고 계셨다. 회진을 하러 매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는 말을 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기다리는 간절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어렴풋이나마 그게 아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내 머리를 불현 듯 스치고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입원한 지 열흘이 다 될 때 쯤인 저녁 무렵 초췌한 행색을 한 젊은 남자가 진료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 분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그는 아버지가 길어야 하루 이틀을 넘기기 힘드시겠다는 내 말에 긴 한숨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다는 부탁을 했다. 면회 시간은 지났지만 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중환자실 할아버지의 면회를 허락했다.

침상 옆에 가지런히 무릎을 꿇은 채로 아들은 아버지께 용서를 빌고 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움이 희석될 때 쯤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도저히 찾아 뵐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아들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의식이 흐려진 채로 고통에 신음하면서 거친 호흡을 하던 할아버지의 손이 갑자기 움직이며 아들의 손을 꽉 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바싹 말라붙은 할아버지의 입술사이로 힘없고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괜챦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찾아오기 훨씬 전부터 아들을 용서하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분이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지 않았을까?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 돼서 그날 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사망 선고를 하러 올라가 본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평온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는 늘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용서하면서 살지만 때론 그 상처가 너무 커서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평생을 잊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이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받은 고통이나 상처라면 잊거나 용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거나 평생을 괴로워

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달라이라마는 ‘ 용서 ’ 란 책에서 ‘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지 사랑이다 ’ 라고 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처의 영향력을 끊어 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나 자신의 삶이 상처로 고통 받고 평생을 살기에는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돌아오니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책상 위에서 향긋한 커피 향을 내뿜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 온기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고통의 응어리를 풀어 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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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늦은 봄의 나른함에 취해 있던 내 정신을 깨웠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집어든 수화기 너머에선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70세 남자 환자인데 농약을 마시고 왔어요. 빨리 와주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간 응급실 한 구석에는 검은 피부에 깡마른 노인 한 분이 침대에 눕혀져 있었고, 뒤 따라온 할머니 손에는 겉면에 푸른빛 약물의 흔적이 선명한 농약병이 들려져 있었다. 순간 “아! 그라목손”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외마디의 비명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라목손은 죽음의 제초제로 조금만 마셔도 3-4일 안에 폐가 굳어져 호흡을 할 수 없어 서서히 고통 속에 죽어가야만 하는 맹독성의 농약인 것이다.

진찰을 하려고 다가선 환자의 얼굴에서 왠지 낮 익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나는 “이게 다 손자 때문이야.” 라는 한 숨 섞인 할머니의 한마디에 어렴풋이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3년 전 그날도 한 여름의 더운 날씨에 해수욕장에 놀러온 관광객들의 크고 작은 사고로 인해 응급실이 한창 붐비던 시간이었다. 그 때 갑자기 피투성이의 작은 사내아이를 업은 채로 할아버지 한 분이 정신없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다. 온통 피와 땀으로 젖은 채 업은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까지도 그 분은 “제발 내 손자 좀 살려 주세요” 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진찰을 마친 후 나는 호흡과 맥이 끊긴 지 한 참 지난 아이의 주검 앞에서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던 할아버지께 사내아이의 사망선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응급실을 뒤덮고 있을 때 뒤이어 젊은 남자 한 명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왔고 그를 통해 사고의 전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해수욕장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죽은 사내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자였다. 워낙에 손이 귀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유독 할아버지를 잘 따라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고 했다. 마침 그 날도 예약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병원근처로 나와야했는데 어찌나 손자가 따라 간다고 보채던 지 도저히 뿌리칠 수 없어 함께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예약손님이 많은 탓에 손자가 미쳐 차에 타지 못한 것도 모르고 차를 후진하는 순간, 뒤에서 쿵하는 소리와 함께 손자가 피를 흘리며 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막 떠나려는 차를 타려던 손자와 그를 보지 못한 그 분의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

사고가 있은 후 충격으로 할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한 채 한 동안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고 퇴원 후에도 손자가 죽어 뿌려진 바닷가 바위 위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바다 만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또 착하고 항상 순종적이던 아들도 아버지 탓에 아이를 잃었다고 하며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 급기야는 할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모진 말과 함께 그 분의 곁을 떠났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생각하던 손자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자식이 자기를 버렸다는 괴로움으로 고통 받던 할아버지는 결국 농약을 마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응급처치를 한 후 할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입원시키고, 할머니께 그라목손의 맹독성과 3~4 일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나는 “제발 저 양반 좀 꼭 살려주세요. 제발” 하는 할머니의 울음 섞인 간곡한 부탁을 뒤로한 채 긴 복도의 어둠속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길어야 3-4일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내 예상을 한 참이나 빗나가게 할아버지는 숨이 차고 타는 듯 한 식도와 온몸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일주일을 넘게 버티고 계셨다. 회진을 하러 매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는 말을 하진 않지만 무언가를 기다리는 간절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어렴풋이나마 그게 아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내 머리를 불현 듯 스치고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입원한 지 열흘이 다 될 때 쯤인 저녁 무렵 초췌한 행색을 한 젊은 남자가 진료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 분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그는 아버지가 길어야 하루 이틀을 넘기기 힘드시겠다는 내 말에 긴 한숨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다는 부탁을 했다. 면회 시간은 지났지만 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중환자실 할아버지의 면회를 허락했다.

침상 옆에 가지런히 무릎을 꿇은 채로 아들은 아버지께 용서를 빌고 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움이 희석될 때 쯤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도저히 찾아 뵐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아들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의식이 흐려진 채로 고통에 신음하면서 거친 호흡을 하던 할아버지의 손이 갑자기 움직이며 아들의 손을 꽉 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바싹 말라붙은 할아버지의 입술사이로 힘없고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괜챦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찾아오기 훨씬 전부터 아들을 용서하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분이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지 않았을까?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 돼서 그날 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사망 선고를 하러 올라가 본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평온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는 늘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용서하면서 살지만 때론 그 상처가 너무 커서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평생을 잊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가족이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받은 고통이나 상처라면 잊거나 용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거나 평생을 괴로워

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달라이라마는 ‘ 용서 ’ 란 책에서 ‘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지 사랑이다 ’ 라고 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처의 영향력을 끊어 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나 자신의 삶이 상처로 고통 받고 평생을 살기에는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돌아오니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책상 위에서 향긋한 커피 향을 내뿜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 온기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고통의 응어리를 풀어 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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